해외취재

유럽의 도시들은 현대에 와서 건설된 도시를 제외하고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도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의 건물들은 대개 건축된 지 100년이 넘는 것들이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도 아직도 깨끗하게 남아 그곳 사람들과 관광객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고 있다.

유럽의 도시계획은 기본적으로 옛날의 도시를 그대로 살리는 가운데 최소한의 개발만을 시도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는다. 독일의 한 도시는 불편을 감수하하면서 옛날부터 써왔던 돌로 만든 도로를 시내에서 이용하고 있다. 이는 옛것을 존중하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전통을 지키기 위한 독일인들의 노력이었다.

내가 여행한 말뫼도 예전에는 석탄 등이 들어오던 항구로 번창했던 곳이다. 항구로서의 기능이 쇠퇴한 지금도 당시 항만시설의 창고 등을 예술가를 위한 갤러리, 학교 등으로 바꿔 그 모습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유럽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에는 전통과 문화가 현대 속에 공존하는 도시들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예전에 북촌 한옥마을을 취재한 적이 있다. 북촌 한옥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근대 한옥들이 밀집한 지역이지만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콘크리트를 군데군데 발라 건물 전체가 흉측하게 변해있다. 그나마 근대 주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지역이 그 모양인데, 다른 곳은 어떨 것인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근대 건축물 등 도시의 전통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40여년의 식민지배와 곧이어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가재건에 힘을 쏟기에도 버거웠던 상황에서 문화에 속하는 근대 건축물까지 지켜나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도시의 중요함을 외치고, 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은 현재까지도 근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는 ‘디자인’을 행정의 기본으로 삼고 세계적이고 아름다운, 경쟁력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우리만의 경쟁력 있는 디자인을 찾기는 요원한 일 아닌가 싶다. 오래된 것은 파괴되어야 할 구식으로만 남고, 다른 나라의 도시의 모습을 따라 우리의 도시를 디자인 하는 가운데, 과연 어떻게 특색 있고 매력적인 우리만의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만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를 만들 기회는 지난번 청계천 복원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의 급한 복원작업으로 인해 우리만의 전통과 문화를 살리는 길은 물 건너가 버렸다. 물론 고가도로 밑에 묻혀있던 청계천을 복구한 것은 옮은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여러 문화재들이 제자리를 잃고 떠돌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복구조차 되지 못했다.

이제는 남의 겉모습만 따오는데 그치지 말고 우리만의 것을 아끼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는 게 어떨까. 그를 통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우리나라에서 문화와 전통이 남아있는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은 소망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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