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름만으로는 너무 심심하다. 남과 구분되는 ‘나만의’ 개성을 나타내려면 보다 독특한 것이 필요하다. 대학도 이름만 다르다고 다른 대학이 아니다.
○○대학이라고 했을 때 바로 우리대학의 이름이 나올만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것들이 우리를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으로 만들어 줄까.
편집자주


고려대와 연세대는 ‘연고전’이라는 독특한 축제를 치른다. 특히 고려대는 붉은색 옷을 입고 서로 단합하며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서강대는 매번 수업종이 울린다는 이유로 서강고등학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대학은 어떠한가?

우리대학은 색(color)도 없고 별명도 없다. 대운동장 공사로 장산곶매마저 잠깐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우리대학을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많은 학우들이 이에 대한 대답에 난색을 표했다. 우리대학에서 회색 또는 조용하고 무미건조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학우들도 많았다. 왜 우리대학에는 이렇다 할 이미지 또는 문화가 없는 것일까.

조용함의 악순환
우리대학이 조용한 것은 사실이다. 주말이면 학생보다 서울시민들이 더 많다. 학생들이 없으니 무언가를 시도하려 해도 성공하기 힘들다.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의 부재와 학내 콘텐츠의 부재는 서로 맞물리며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학교에서 할 만한 일이 없으니 관심이 멀어지고, 그만큼 학생들의 관심이 저조하니 콘텐츠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힘들다.


많은 학생들이 이에 아쉬워하고 있지만 선뜻 개선에 앞장서는 사람은 없다. 축적된 문화가 없다는 사실은 그동안 지속되어 온 악순환에서 학생들을 구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축적된 것이 없으니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 또한 이에 한 몫 한다. 대학 문화의 주축이 되는 동아리문화 역시 우리대학에서는 그다지 활발한 편이 아니다. 동아리부원들은 열성적이지만 정작 동아리부원이 아닌 학생들과의 소통은 원활하지 못하다. 동아리들이 매번 정기 공연을 해도 학생들의 참여는 저조하다는 것이 이를 나타낸다. 우리대학에서 동아리들 역시 하나의 문화라고 말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없지 않다.

같이 호흡하는 공간의 부재
김형민(토목 04) 동아리연합회장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한데 학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공간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대학의 현 모습에는 하드웨어적인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술을 먹고 놀려고 해도 학교 근처가 아니라 신촌으로 가거나 한다. 학교에 학생들을 붙잡아 둘만한 것들이 없으니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있질 않는다. 또한 동아리에서 공연 기획을 활발하게 하려고 해도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자작마루 하나뿐이다”는 것이 김형민 동아리연합회장의 말이다. 같은 대학 구성원이면서도 우리대학 학생들은 하나의 구심점을 갖기 못하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단절을 끊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공간이 필요한데 그마저도 학내에서는 부족한 것이다.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학교가 지니는 의미는 수업하는 공간이라는 것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학교와 학생들 간의 유기적인 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학내가 학생들이 즐길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김형민 동아리연합회장은 “종로의 피아노 거리처럼 독특한 공간이 마련돼 학생들을 붙잡아 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의미도 없다. 반대로 사람들이 모이면 저절로 일이 생긴다. 대외적으로 우리학교를 알릴 수 있는 랜드 마크는 차치하더라도 학생들을 붙잡아 두는 공간을 구축하는 것은 이 악순환을 단절하는 하나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너와 나를 이어주는 콘텐츠 필요
단순히 공간 부재만으로 우리대학의 현주소를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공간 부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려운 이유일 뿐이다. 악순환이 시작되기 전, 애당초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관성 있는 콘텐츠의 부재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대학은 학생 측과 학교 측의 의견이 매번 엇갈리며, 서로 합심해서 학생들에게 일관성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하나의 컨셉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조영훈(경영 04) 총학생회장은 “학교의 정책과 방향, 이미지가 문화를 형성하는 주체, 즉 총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와 기타 단체와의 방향과 달라서 나타나는 문제인 것 같다”며 “문화적으로 우리대학만의 어떤 것을 떠올리기 어려운 것은, 학우들이 지닌 충분한 문화 잠재력을 어떠한 성격으로 발산해야 하는지 정확한 컨셉을 잡지 못하는 주최단체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 같다”고 우리대학 문화 부재에 대해 말했다.

우리대학의 각 학과에서 양산되고 있는 활동과 문화들을 다른 대학과 비교해서 떨이지지 않는다. 하지만 벽돌도 모여야 집이 되고 조각들도 맞춰야 퍼즐이 된다. 학내에 그것들을 한곳으로 모아줄 매개가 없다. 타 대학과 비교해 학생 수는 적은데 그나마 있는 학생들도 과 단위로만 모인다. 단과대 단위로 무언가 기획되어서 일을 추진하는 것도 드물다. 학교 차원에서의 일이라면 오죽할까. 그동안 축적된 문화가 없었던 데에는 이런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서울시립대’라는 정체성 만들어야
서울시립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학과 혹은 단과대 단위로만 묶여야 하는 것일까. 학내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조각들을 가지고 서울시립대만의 멋진 문화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학교와 사람의 관계가 예전부터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도 머지않아 우리학교의 기존 분위기를 따라간다. 애석한 일이지만 시립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상태에서 머물 것인가. 이제 악순환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리대학이 다른 대학과 차별화 되지 않은 곳이라면 우리대학의 앞날이 밝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것들은 장소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던 이유는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조금씩 노력하면 우리만의 것, 혹은 우리만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문화들을 발굴해 내거나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다같이 소통하고 화합하는 멋진 시립대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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