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 주는 남자



내 혈육을 묻고 돌아오던 길에서, 당신의 마지막 말씀을 다시 떠올려본다. 혹 과장된 무용담처럼 들리기도 하던 전쟁의 이야기였지만, 분명 그것은 이 땅의 역사였다. 다시 그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은 2009년 여름이 지독히 더웠던 까닭이 아니다.

지난 계절에 두 번의 국상(國喪)을 치르며, 다시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 볼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념 이상의 무엇도 아닌, 철저히 이념 그 자체만 남은 이 땅의 역사는 이제 말 그 자체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위의 시에서 시인이 바라보고 있던 가을 온정리의 풍경처럼.

다소 밝은 모습의 북녘 풍경을 그리고 있는 이 시에서 우리는 ‘역사’와 ‘자연’이라는 두 가지 시적 요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든 역사가 있고 자연이 있다고 하겠지만, 우리가 그 두 가지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자연만이 위대한 까닭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의 역사가 참으로 가혹했던 까닭이다.

언젠가 우리는 저 온정리의 풍경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지난 날 그 땅에 서 있던 이들의 몫이 아니라, 바로 내일 그 곳에 서 있어야 할 이들의 과제이다. 시에서 온정리의 ‘붉은 단풍숲’이 주는 함의는 자연의 위대함이 아니라, 이념의 허망함이 혹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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