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북병(南酒北餠), 남산 밑 남촌에는 허생전의 허생원 같은 한량들이 많아서 술이 유명했고, 궁궐이 가까운 북촌엔 벼슬아치들이 살던 대갓집이 많아서 떡이 유명했음을 일컫는 말이다. 이때의 남촌과 북촌이라는 표현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한다.

남촌에는 왜 한량들이 많았을까

남산 밑 과거 남촌이라 불렸던 중구 필동에 있는 남산골 한옥 마을에서 왜 남촌에 한량들이 많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필동 지역은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이름 높았던 곳이다. 이 곳은 신선이 사는 곳, 청학동으로 불릴 만큼 경관이 뛰어났다. 89년 남산골 제모습찾기 사업을 통해 이 지역은 조선시대로 시간을 되돌렸다. 남산의 산세를 그대로 살리고 훼손된 지형을 보존해 예전처럼 계곡을 만들었다. 정자인 천우각의 원형이 복원돼 좋은 자연풍광 아래 풍류를 누리는 것은 이제 시민들의 몫이 됐다.

다섯 한옥으로 느끼는 옛 정취

한옥 마을에 모인 다섯 채의 한옥은 본래 종로, 제기동 등 서울 시내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한 데 모인 이 집들은 실제로 사람들이 살았던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가옥의 형태는 서울의 팔대가 중 하나였던 박영효 가옥부터 일반평민의 집까지 아우른다.각각의 집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사연만큼이나 집의 형태나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순정효 황후 윤씨의 친가는 조선 제27대 순종의 황후인 윤씨가 13살에 동궁계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인데, ㅁ자형의 집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집이 으리으리해 보이게 한다. 이는 세 개의 기단 위에 집이 얹어 있는 모양으로 집이 다른 집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보통 기단을 한 단으로 쌓았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집만 보고도 집 주인의 지위와 품격을 알 수 있다. 세 기단은 제25대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의 집에서도 볼 수 있다.

현대와 전통의 공존을 느껴봐

남산골 한옥마을을 둘러보면 마치 시간을 되돌아간 듯하다. 집의 겉모양만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게 아니다. 매일 각 가옥 안에서 전통문화 강좌, 국악 연주, 무형문화재 시연 등도 이뤄진다. 방문객들을 위해 꾸며진 프로그램이 아닌 마치 실제처럼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박영효 가옥 대청마루 위에서 피리 연주자가 연주를 마치고 곡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이 곡은 결혼식 때와 임금이 행진할 때 연주됐다고 합니다” 대청마루 위 연주자의 맞은편에 앉은 열 댓 명의 방문객들이 일제히 연주자의 설명을 듣는다. 한 외국인 관광객은 통역사를 통해 이것저것 궁금증을 드러냈다. “악보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연주가는 자신이 보면서 연주하던 오래된 책을 들어 보이며 정간보를 소개하고, 방문객들에게 정간보를 돌려가며 볼 수 있게 건네준다.



한옥들이 밀집된 뒤편에는 1994년 지하 15m에 서울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을 묻은 장소가 있다. 타임캡슐에 담긴 것은 서울의 생활, 풍습, 인물, 문화예술 등을 상징하는 것들로, 600년 동안 지켜져 온 서울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 타임캡슐은 서울의 역사가 1000년이 되는 2394년 후손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이 7,934㎡의 부지가 온전히 전통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다. 고개를 살짝만 들어도 남산 위에 높이 솟은 현대 서울의 상징, 서울의 가장 대표적인 랜드마크 남산타워가 보이기 때문이다. 한옥의 서까래 너머로, 서울의 600년 역사의 산물을 담은 타임캡슐 너머로 보이는 남산타워는 이색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전통속의 현대, 현대 속의 전통을 느끼게 한다.

한옥을 통해 바로보는 현대의 삶

이밖에도 한옥 마을을 둘러보면 옛날과 다른 현대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옥의 잠금장치는 집 안쪽에 위치해 있다. 집 바깥쪽 문에는 안에 있는 사람을 부르기 위한 손잡이만 있을 뿐이다. 현대에는 집 안쪽과 바깥 쪽 모두 잠금장치가 있지만 바깥쪽 잠금장치의 이용이 훨씬 많다. 이처럼 집안에서 대부분의 활동을 했던 옛날의 모습을 통해 현대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선조들의 지혜를 현대에 적용하는 모습도 적지 않다. 나무로 만든 한옥이 불에 쉽게 타지 않도록 만든 화방벽이나 구들 난방법의 원리는 현대에도 적용되고 해외로까지 널리 퍼져 나가고 있다.

‘상놈처럼 문지방을 넘어다니고 그러니’하는 타박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한옥의 창문은 워낙 크고 많기 때문에 문과 쉽게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마루에 걸터앉아 팔을 기댈 정도의 턱이 있는 곳은 창문이고 턱이 없는 곳이 문이다. 양반은 문으로만 출입하지만 상놈은 문, 창문 가리지 않고 출입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이 모든 것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를 이해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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