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날이 저물 무렵, 미술관이 다시 북적인다. 금요일 저녁 미술관 외부에는 100여 명도 훨씬 넘는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둘러쌌다. 미술관 관람시간도 끝나갈 무렵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오는 19일까지 진행하는 미디어아트 라이트월(Light Wall) 전시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미술관 건물 외벽에서 진행된다. 미술관 내부에 마련된 전시물을 감상하고 돌아가는 관객들의 발걸음은 문을 나선 후 미술관 앞에서 다시 멈춰 선다. 미술관 벽면을 수놓는 다채로운 빛의 향연 때문이다. 어느새 미술관은 내부보다 외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대기 시작한다. 건물을 마주한 채 자리잡은 관람객들의 감상 열기가 여느 고전화가의 전시 못지않다. 그렇게 사람들은 미술관 외벽이라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빛의 이야기를 감상한다.


이 전시는 빛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레이저쇼와 비슷하기는 하나 선형적인 레이저쇼와는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2편의 영상이 10분간 상영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사 하나 없는 이야기를 관람객들은 눈과 마음으로 쫓아간다.

작가 그룹 뮌이 풀어가는 이 전시는 현대 도시인들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과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구현하는 2편의 영상으로 구성돼 있다. 올해 유난히 긴 여름 끝무렵에 미술관 외벽에서 만나는 흰 북극곰과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눈 내리는 모습은 다가올 겨울을 미리 맛보게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라이트월 전시에 대해 “미술관 외벽을 미디어 벽으로 활용해 예술적 영상을 제작·투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야외 전시를 통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미술관이 시민들에게 친밀한 문화의 향유 공간으로 인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한 관람객은 “예술은 전시관 안에서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렇게 외부에서 진행하니 새롭고 미술관의 분위기도 더욱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최근 외벽을 활용한 예술은 벽화거리 등으로도 나타난다. 궁전, 성당, 사원 등의 벽화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더 일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최근 허름한 외벽을 탈바꿈하는 벽화거리조성은 서울시 홍제동, 인천 산곡동, 수원시 장안구, 제주도 중앙동, 청주 금천동 등 전국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벽화는 그 거리를 공유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소소한 기쁨을 준다는 점이 매력이다. 예술, 이제 더 이상 미술관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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