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속에서 ‘그림’은 하나의 문화 파워를 의미할 정도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중에도 예술만을 위한 예술인 순수예술, 그리고 그 건너에는 대중과 호흡하는 또 다른 예술이 있다. 순수예술이 아니어서,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예술이라고 해서 찬밥신세를 당했던 시대는 끝났다.

특히 일러스트는 최근에 주목받는 분야로, 과거에는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해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러스트 분야가 황무지였던 때부터 현재 각광받는 산업으로 자리잡을 때까지의 모든 시간을 애니메이터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북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분이 있다. 우리나라 원조 삽화가이자 현재는 블로거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강인춘씨를 만났다.


한우물만 고집했던 그의 그림 인생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방신문에 소설 일러스트를 연재하면서 그의 일러스트 활동은 시작된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 후, 그는 “우리나라의 일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일러스트 쪽은 황무지와 같았기 때문에 그 분야로 그림의 방향을 잡으면 서양화의 ‘피카소’만큼은 아니더라도 유명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인춘씨는 신문사 출판국에서의 잡지일로 23년을 보내고 북디자이너로, 애니메이터로 일했다. 단 한번도 그림과 동떨어진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셈이다. 그는 “돌아보면 기억에 가장 남는 일은 황금박쥐 애니메이션을 내 손으로 그렸다는 것과 장춘동의 국립극장 창립무대에 무대미술 설치를 경험한 것이다. 이것들은 지금의 내 일러스트레이션의 밑거름이 되었다”며 지난 일들을 회고했다.


갑자기 닥친 시련, 한 줄기의 빛이 돼 준 블로그
강인춘씨는 2004년 구강암이라는 악마를 만난다. 세상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13시간이라는 대수술 끝에 다행히 그는 새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후 오프라인 활동을 접고 ‘강춘의 남자 여자’로 블로그 작업에 뛰어들었다. 세상에 사는 남녀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출판시장의 틈새를 공략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짧은 기간 동안 세 권의 책을 발간했다. 한 장의 그림과 그 그림에 대한 짧은 단상들이었다.

여러 군데의 크고 작은 출판사와 신문사에서 블로그를 통해 원고 청탁도 들어왔다. 강인춘씨는 자신의 미래 블로그 계획에 대해 “일러스트로서 많은 나이이지만, 사는 동안 지금처럼 꾸준히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것이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기록장이 돼주는 블로그의 매력
“블로그는 내 마음대로, 내 취향대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다” 강인춘씨는 블로그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60세가 훌쩍넘은 나이로 2008년 다음 블로거 기자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블로그를 개설한지 겨우 1년여 만의 쾌거였다. 현재 2년째 블로그를 운영중이고, 하루에도 몇 만 명이, 지금까지 499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강인춘씨는 “인기라고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세상에 남녀가 부딪치며 사는 얘기를 솔직하게 풀어 놓는다는 것에 많이들 공감하시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또 그는 “블로그는 일종의 나의 기록장이다. 그래서 싫증나면 쉬면 되고, 생각나면 글을 올리면 되는 것이다. 부담감이 없어서 좋다”라고 말한다. “특히 그림 한 장에 많은 방문객이 찾아올 때 느끼는 환희는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즐거움이다”라며 블로거로서의 기쁨을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방에 풀리는 느낌을 아세요?”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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