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훈 작가

사진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
추위 때문에 붉게 얼어버린 볼. 입을 굳게 닫고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무엇이 담긴 걸까. 성남훈씨는 동티벳 비구니들의 얼굴에서 그들만의 정신을 보았다. 지난해 성남훈씨는 중국에 종속되며 이름이 없어진 동티벳 캄지역(현 중국 쓰촨성 깐츠현)에 위치한 불(佛)학원을 찾아갔다. 성남훈씨는 “내가 갔던 곳은 전기와 수도도 없을 정도의 오지였다”라며 “그곳에서 공부하는 그들의 정신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시대적 상황은 그들의 정신을 더욱 꼿꼿이 보이게 만든다. 휴대폰이 보급될 정도로 도시생활이 알려져 있어 고생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불학원에는 만 여 명 정도가 불교 공부를 하고 있다. 이들 중 70% 정도가 비구니이고, 20대 전 후반의 젊은 사람들도 절반 가까이 된다.

성남훈씨는 지난 15년간 전쟁지역을 쫓아다니면서 거대 담론을 다뤄왔다. ‘유민의 땅(The Unrooted)’이란 사진집을 출판할 때까지 쉼 없이 내달렸다고 해야 할까. 그는 잠시 한숨을 돌리는 찰나에 ‘아시아의 여성’이라는 작은 주제를 다루었다. 마음의 여유 때문인지 그의 작품도 한결 간결해졌다.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방식이 아닌 피사체의 얼굴만 클로즈업한 사진이었지만,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전시회에는 14장의 얼굴 사진들이 걸렸다. 성남훈씨는 “내가 보고 생각한 것들을 타인과 공감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수상의 의의를 말했다. 사진은 보여주는 미학이다. 그는 말 한 마디보다 한 장의 사진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에게 사진이란 생각을 옮기는 그릇이다.


▲ 루마니아집시. 홀레. 프랑스.1992

떠나는 이의 등에 업힌 아픔을 보고 사회를 짊어지다
성남훈씨는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꿈은 좌절됐고 대학 입학 후, 예술을 하고 싶은 마음에 연극동아리에 가입했을 뿐이다. 동아리과를 졸업했다고 농담할 정도로 그는 연극에 빠졌었다. 연극을 하다 보니 그동안 꿈꿔왔던 것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사진에 관심이 있던 동아리 친구를 보고 사진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는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 유학시절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가 유민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그 때였다. 그는 고속전철을 타고 통학하다가 우연히 루마니아 집시를 발견했다. “들판에서 매일 불빛이 반짝반짝거렸다. 아침에 보니 카라반(상인)하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성남훈씨가 유학하던 당시는 소련의 영향권에 들었던 동구권이 무너져 많은 집시들이 이동했던 시기였다.

성남훈씨는 카메라 하나만 들고 집시들을 찾아갔다. 그는 1년이 넘게 한 달에 최소 2~3번은 그들을 만났다. 어느새 집시들의 거주지는 그에게 배움의 장이자 놀이터가 되었고 서서히 그들의 삶과 생각이 보였다. 구걸을 해서라도 돈을 번 후에 루마니아로 돌아가 떵떵거리고 살고 싶은 것이 집시들의 꿈이었다. 실제로 부를 이룬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난하며 천대받았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집시들이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쥐’라고 불렀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집시들과 자신의 동질감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다.

성남훈씨는 집시들의 사진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르살롱’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험 등으로 프랑스 사진 에이전시 ‘라포’에 들어갔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서 예술가보다는 저널리스트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편한 것을 추구해서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이 적은 것 같아 안타깝다”며 “나도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민한다. 하지만 고민이 없다면 발전도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끼리 ‘변화를 위한 사진 모임’을 갖고 있다. 올해 그들은 사진 몇 점을 이용해 만든 달력의 판매 수익으로 용산 철거민을 돕는 등 사회와 마주보려고 노력 중이다.


▲ 2009 세계보도사진전 수상작

검정 옷의 사나이가 사진에게 컬러를 양보한 이야기
성남훈씨가 찍힌 사진 몇 장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입고온 옷 차림새를 보면 그가 검정색을 고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검정은 자신을 가장 나타내지 않는 통제된 색이다. 카메라와 옷을 검정색으로 갖춘 채 작업 현장에 선다. 그는 “검정색 옷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남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검정색을 입는 사진작가들이 몇몇 있다. 우리끼리는 ‘교복’이라 부른다.(하하)”

검정색 옷과 달리 성남훈씨의 사진은 컬러를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컬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사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유일무이한 나만의 것을 찾아 헤매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같은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자신의 색깔로 재해석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감히 말해도 될까. 그의 사진은 굉장히 동양적인 빛깔을 가지고 있다. “촌놈이 찍는 게 어떻게 도시적일 수 있어. 하려고 해도 안 된다니까”라고 말하는 성남훈씨의 내면에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검정색 옷차림에 사회의 짐을 짊어지고 뭘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끝내 본능에 이끌려 셔터를 누르는 사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 그는 앞으로도 사진을 통해 그의 생각을 보여줄 계획이다. “최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인간과 환경’이다. 북극을 한번 들릴까 하는데…” 그의 행보를 마음껏 기대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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