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MT가서 세미나하고 술을 마시며 사랑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한마디가 아직도 마음을 어지럽힌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의 모습이 언젠가의 내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기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민망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사랑의 쓴맛을 좀 더 봐야겠다”고 철없이 외치고 다니던 중, 정말 그렇게 돼버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내 주위엔 온통 우울의 아우라가 번지던 시절. 당시 일기장은 시집을 방불케 했고 친구들조차 만나고 싶지 않았다. CDplayer엔 늘 같은 CD의 같은 곡만이 반복해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궁상이 또 있을까.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한없이 부여잡고 있는 내가 끔찍해 가장 거친 시멘트 바닥을 찾곤 했다. 이걸 부숴 버려야 내가 자유로울 것만 같았던 때가 있었다.

그 해(라고 해봤자 작년이군)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다. 시덥잖은 이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석계역에 잠시 서 있었다. 물론 귀에 꽂힌 이어폰엔 예의 그 처량한 음악이 흐르고. 플랫폼에 멍하니 서 있던 머리 위로 뜻없이 흩날리던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그 날 나는 정말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훌쩍 커버린 듯한 유지태가 서서 짓던 웃음이 그와 같았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 종종 그 장면이 생각날 때면 나는 반드시 그 날의 석계역도 떠올리는 것이다.

사실 끝내 핸드폰은 어쩌지 못했다. (다시 살 돈도 없었고)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치유한 것은 끝끝내 울리지 않던 전화였다. 나는 왠지 키가 큰 것 같았다.

여기까지, 「봄날은 간다」가 결코 남일 같지 않은 이유이다. 누군가는 술로써 점철된 생활을 한다는데, 나에겐 사랑과 연애가 가장 큰 화두였고 최대의 난제였다. 순정만화 속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학에 들어오면 막연히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물론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빌빌대고 있지만. 아마 다들 그런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으리라.

멋진 사랑이란 나의 성장을 토대로 해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 같다.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해지듯. 시간은, 또 대학이란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자라게 하니 사랑에 관한 그 신화가 정녕 틀리진 않는 것 같다. 나는 그때 키가 조금 자랐지만, 대신 살이 많이 빠졌다. 이번엔 사랑으로써 무럭무럭 살찌는 나를 보고 싶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캠퍼스 안의 뭇 남성들을 훑고 있다. 참고로, 내 이상형은 성시경과 조인성. 과연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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