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한 그릇된 인식 타파해야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아요” 지난 1월 6일 서울시 송파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던 A씨의 첫 마디였다. 지난 1월 17일 SBS ‘TV 동물농장’이 방영된 후 A씨는 인터넷 상에서 ‘공공의 적’으로 유명인사가 돼 버렸다. 8마리의 강아지를 라이터로 지지고 발톱을 뽑는가 하면 커터 칼을 먹이고,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잔학무도한 행위들이 낱낱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방송이 전파를 탄지 이틀이 지난 후 ‘다음 아고라’에는 1만5천여 명의 네티즌들이 “연쇄동물학대범을 처벌하라”라는 청원서를 내놓는가 하면, 수많은 국회의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동물학대범의 엄중한 처벌을 요청하는 글들을 게재했다.

일상 속의 동물학대
동물학대 행위는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작년 12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DC INSIDE’에 햄스터를 믹서기에 넣어 갈아 죽인 동영상이 공개됐고 지난 달 14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에는 10대로 추정되는 여학생들이 금붕어 3마리를 길바닥에 내던진 후 담뱃불로 지지고 발로 밟아 죽이는 사진을 게재했다. 뿐만 아니라 작년 8월 SBS ‘TV동물농장’에서는 주인에게 구타 등을 당하며 학대에 시달린 누렁이편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잔혹한 동물학대 행위가 공개되곤 하지만 실제로 상당수의 학대 행위가 여론화 되지 못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동물학대와 관련된 글들이 올라오고, 그중 일부는 그 실상이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의 전경옥 국장은 “하루에 한 건씩 꼬박 동물학대에 관련된 글이 올라온다”며 “최근에 한 오피스텔에서 동물학대를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는데 주인이 매일 밤 강아지를 때리는 등 주변 이웃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소름끼치는 학대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또 송파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자주 신고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볼 때 거의 2배 이상의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 죽이지 않으면 50만원 뿐
농림수산식품부는 동물보호를 목적으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다. 2008년부터 시행된 이 법은 동물에 대한 학대행위 방지 등 동물을 안전하게 보호·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으로, 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도모하고 복지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이 법은 동물학대에 대한 조항을 둠으로써 학대방지를 규정한다.

동물보호법 제7조에 따르면 동물소유자는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여선 안 되고 동물에게 약물이나 도구를 사용해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의 금지를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에는 최고 5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하지만 동물보호법이 실제로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다.

동물보호법 7조 4항에는 동물유기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과태료는 최대 5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동물학대로 접수되는 사건들 중 상당수가 유기행위임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처리방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마포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최영희(39)씨는 “병원에 이송되는 동물들 중 상당수가 유기견들이다. 그런데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서만 최대 500만원 형을 부과하고 유기행위에 대해서 50만원의 과태료만 부과하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동사모)의 강필진 대표는 “동물학대란 동물에게 상처를 주는 것인데, 그것마저 경중을 따져 따로 처벌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500만원? 그런 적도 없었다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학대에 대해 최고 500만원의 벌금형을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최고 벌금은 300만원 선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동물자유연대 전경옥 국장은 “작년에 개 우리에 고양이를 던져 넣어 고양이가 잔인하게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의 재판결과 3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년 간 동물학대 사건에 대해 위법행위자는 최대 5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머물렀다.

지난해 6월 대구에서 살아있는 고양이를 덫에 넣은 채 불에 태워 죽인 사람에게 2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17층에서 고의적으로 고양이를 떨어뜨려 죽인 사람은 고작 5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또 앞서 SBS ‘TV동물농장’에서 논란이 됐던 연쇄동물학대자는 50만원의 벌금형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접수되는 동물학대 사건들이 법을 잘 모르는 경찰들에 의해 훈방조치 혹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가 취하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미온적인 사법처리가 계속되자 동물보호단체는 처벌 규탄 집회를 열었다. 지난 1월 24일 동물사랑실천협회,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서울광장에서 검찰, 사법부의 동물학대 솜방망이 처벌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어떻게 동물을 학대했는 데도 겨우 50만원의 벌금형으로 그쳤는지 이해가 안 간다”라며 “사람을 죽이면 사형이고, 동물을 죽이면 고작 50만원인가?”라며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이처럼 솜방망이식의 사법처리와 관련해 동물보호단체의 분노가 가시지 않는 가운데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2월 조승수 의원은 500만원의 벌금형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50만원의 과태료를 500만원으로 처벌 기준을 상향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법률개정안을 내놓았다. 진보신당 이민우 보좌관은 “동물보호법 자체로 문제가 많았지만 그 중에서 처벌과 관련된 부분들이 가장 문제였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1년 이하의 징역형을 추가해, 위법자들에게 더 큰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동물보호감시관 고작 80명
동물보호법 제19조에는 동물의 보호와 학대방지를 위해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을 지정하기로 돼 있다.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은 동물보호·복지에 관한 교육·상담·홍보·지도·동물학대행위에 대한 신고 및 정보 제공 등의 직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실제로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은 그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수산식품부 안유영 사무관은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은 80여명”이라며 “점진적으로 그 수를 확대할 예정이다”라고 답했다. 전경옥 국장은 “80여명의 수로 전국적인 동물보호 활동을 하는 것은 힘들다.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이 단순히 동물학대행위에 대한 감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보호에 대한 교육 등 상당히 많은 일을 하는데 현재 인원으로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답했다.

또한 실제 동물보호명예감시관들에 대한 행정적 지원은 예산의 범위 안에서 수당 및 필요한 경비를 지급하는 것이 전부다. 즉 경비만 지급할 뿐 학대현장과 명예감시관들을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박희태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은 “매일 일을 찾아서 한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학대행위를 알아내고 보호조치를 한다”며 “사실 교육, 상담, 홍보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야되는데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의 수도 부족할 뿐더러 관련(교육, 상담, 홍보) 인프라도 잘 갖춰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라며 행정적 네트워크의 부재를 문제 삼았다.

동물도 ‘생명’이다
수많은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변호사, 국회의원들은 사법적인 규제강화를 외치는 것과 함께 동물보호법이 바라보는 ‘동물’의 그릇된 인식 역시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SBS ‘TV동물농장’ 김재원PD는 “동물보호법 자체가 법철학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동물을 ‘물건’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방송취재를 하던 중 송기훈 변호사를 만났는데 그 분도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소모품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라며 “아무리 법이 개정되고, 처벌 기준이 강화되더라도 동물을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전경옥 국장은 “동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개 동물은 개인의 소유물로 간주해 그 자체의 소중함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런 풍토가 사라져야 한다”라며 “동물은 소유물이 아닌 생명이다”라고 동물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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