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찌푸리지 마. 임마, 이게 뭐가 어렵냐?” 감독의 말에 선수는 얼굴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 무게로 운동하려면 얼마나 힘든데요. 그럼 감독님이 한번 해보세요” 농담으로 한 선수의 말이었지만 감독은 선수의 말대로 운동기구에 올라서 시범을 보이고는 선수를 바라보며 씩 웃는다.
엄한 표정으로 말을 하다가도 선수들을 쳐다보면 웃음이 나오나 보다. 그에게 훈련받고 있는 한 선수는 “감독님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진짜 재밌는 분이에요”라고 말한다. 자, 그럼 이쯤에서 진짜 재밌는 현대건설 여자 프로배구팀 황현주(세무 85) 감독을 한번 만나볼까.



우승청부사, 독사, 초딩감독, 초동안, 다중이, 이중인격자… 황현주 감독에게 그의 별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짓는다. 선하게 웃을 때 보이는 눈가의 주름만큼이나 별명이 많은 그다. 자신의 별명에 대해서 그는 “별명 그대로가 나를 표현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독사라는 별명은 황현주 감독이 여느 감독들처럼 운동시간에 선수들을 엄하게 지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운동은 어설프게 해선 상대를 이기지 못한다”며 “더구나 실력이 없으면 대우받지 못하는 세상이 됐기 때문에 선수들은 프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자신의 지론을 펼쳤다.

운동시간에는 독사처럼 엄하게 선수들을 대하는 그는 초딩감독이라는 귀여운 별명도 갖고 있다. 그는 “훈련 중에 힘들 때면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어진 별명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무 살 남짓한 어린 선수들과 함께 해서 그런지 마음만은 아직 십대 같다. 선수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하는 행동 때문에 불리는 초딩이라는 별명도 그에겐 달갑게만 들리는 듯했다.

황현주 감독은 역경도, 화려한 경력도 모두 갖고 있다. 한 번의 경질 후 흥국생명에 재영입되면서 이끌어낸 2006-2007 시즌의 우승, 또 한 번의 경질, 그리고 최하 순위를 달리던 현대건설 감독으로 취임한 후 1년 만에 거머쥔 2009-2010 시즌 우승. 그의 우승비결은 무엇일까. “어떻게 항상 우승을 하나”라는 질문에 그는 “나라고 어려운 시절 없었겠냐”며 즉각 반문한다. 그는 “28번의 시합 중에 단 3승만 차지한 시절도 있었다”며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고 후회한 적도 많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경질을 당했을 때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당시의 실패가 이후의 우승을 만들어준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그는 시합에서 선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감독 혼자선 우승도 실패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감독이 선수들의 마음을 알고 선수도 감독들을 믿고 따라와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의 권위나 선수의 프라이버시를 따지기 이전에 감독과 선수의 커뮤니케이션을 돈독히 해야 하는 종목, 이것이 그가 말하는 배구다. 그는 말한다. “스타플레이어로 구성된 팀이라면 매번 우승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팀에 따라서 자신의 힘의 100을 발휘할 수도, 120, 130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 배구이다”라고. 그가 진정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까닭은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했던 그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황현주 감독이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행동에서 드러난다. 황현주 감독은 시즌 중에는 거의 선수들과 함께 지낸다고 했다. 1년에 쉬는 날 빼고는 거의 체육관에 있는 그는 “선수들을 어찌 보면 가족들보다 더 오랫동안 보는지도 모르겠다”며 “선수들은 제 2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매년 겨울 시즌이 돌아오면 집에 가지 않고 6개월 가량 체육관에서만 생활하는 그는 “선수는 고생시키고 나는 고생 안하면 되겠냐”며 “함께 고생하고 땀 흘려야 팀웍이 좋아지기 마련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항상 체육관에만 있으면 답답할 법도 하건만 스치듯 내뱉는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저기 밑에 보이는 아파트보다 여기 온도가 3도 정도 낮아요. 신기하죠? 여기(용인)에 체육관이 있고, 서울에 사무소가 있는데 요즘 서울에만 가면 덥고 공기가 나빠 도무지 오래 있기 힘들다니까요”


최근 여자 프로배구팀은 우리대학에서 유난히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5개팀 감독 모두가 서울시립대 출신이었고, 올해는 3개팀 감독이 서울시립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우승팀 흥국생명 어창선(행정 87) 감독을 비롯해 2위 GS칼텍스 이성희(행정 86) 감독, 그리고 3위 KT&G 박삼용(경영 87) 감독이 우리대학 출신이었고, 4, 5위에 그친 현대건설과 도로공사가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을 경질하고 각각 황현주 감독과 신만근(행정 84) 감독을 영입하면서 ‘서울시립대 천하’가 완성됐다.

황현주 감독은 선후배 사이인 다른 팀 감독들과도 서로 연락하고 잘 지내는 편이다. 그는 우리대학 동문이 5명이나 되고 체육관이 근처에 위치하기도 해서 동문들끼리 자주 만나고, 가끔은 술도 한잔씩 걸친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자신의 팀 얘기는 서로 안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동문들끼리라 해도 알게 모르게 경쟁의식이 작용하는 탓이다. “여자 프로배구팀에 우리대학 동문들이 많아서 좋은 점이 많지만 경쟁을 해야 돼서 부담스럽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마지막으로, 황현주 감독은 학생들에게 목표의식과 성실성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 자신의 목표를 뚜렷이 설정해야만 힘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는 추진력이 뒷받침된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덧붙여 목표에 대한 도전을 할 땐 나이를 상관치 말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그만큼 넓은 시야를 갖게 돼 일단 도전하면 성공하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 선수생활을 접고 감독으로서 제 2의 황금기를 맞고 있는 그의 성공처럼 말이다.

황현주 감독은 선수시절 당시를 화려하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남자선수로서는 작은 179cm의 키 때문에 큰 빛을 보지 못했던 당시 시절이 지금의 그를 지도자로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그는 사실 “감독이 되니까 선수 때보다 더 힘든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은 그때도 지금도 뚜렷하다. “욕심이 욕심을 부른다고 해야 하나요. 올해 우승 했다고 내년에 또 우승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그의 말처럼 그의 끝없는 욕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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