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 터키 2) 이스탄불 술탄아흐메트지구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초등학생이 돼 있었다. 수학여행 전날 잠 못 이루고 설렘과 기대로 한껏 부푼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 시절처럼 말이다. 특히나 이번 여행은 더 그랬다. 혼자 떠나는 여행, 그것도 비행기로 13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터키. 그 중에서도 이스탄불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막연히 ‘한국 전쟁 때 연합군으로 참전한 국가’, ‘한·일 월드컵 당시 3·4위전을 다툰 국가’로만 알고 있던 터키였다.

터키에 대해, 아니 이스탄불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던 나는 당장 서점을 찾아갔다. 터키와 관련된 책을 한 권, 두 권 꺼내기 시작했다. 읽는 책마다 첫 장에는 이스탄불이 소개되고 있었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 등 현란한 수식어로 표현되고 있는 이스탄불에 대해 글자 그대로의 느낌만으로는 도대체 어떤 곳일지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이스탄불에서 나는 책 속의 표현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거리엔 온통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건물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터키, 그 중에서도 이스탄불을 찾아 떠났다.


▲ 블루 모스크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로 구· 신시가지와 소아시아로 나뉜다. 그리스, 로마와 함께 유럽의 일부분으로 여겨졌던 구·신시가지와 인도, 중국 등을 담고 있는 아시아 반도의 교량 역할을 하는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함께 어우러진, 하지만 각각의 상반된 특징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이스탄불은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지금의 이스탄불인 비잔티움을수도로 정했다. 이후 그는 수도 비잔티움을 콘스탄티노플이라 칭하며 1000년간 이어질 막강한 제국으로 성장시켰다. 상업적으로도 이스탄불은 막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타클라마칸사막의 북변을 통과하는 ‘실크로드’와 지중해 상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중세 유럽 상권을 부흥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이스탄불은 아직까지 비단과 돗자리 등 직물 산업이 유명하다.

그러나 1453년, 이미 콘스탄티노플 주변을 장악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아흐메트 2세 앞에서 동로마의 상징이었던 비잔틴 제국은 손대면 우르르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실제 동로마 제국은 당시 철옹성이라 불렸던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사이에 두고 56일 동안 항전했지만 끝내 오스만 제국의 끈질긴 공격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비잔틴 문화와 오스만 문화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 그랜드 바자르 내부

하루동안 천년의 숨결을 느끼다

13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뻐근한 어깨와 허리를 감싸고 하바아라느 공항을 빠져나왔다. 오전 9시, 여행을 시작하기 딱 좋은 시간대였다. 첫 여행지로 정한 곳은 구시가지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술탄아흐메트 지구였다. 술탄아흐메트 지구는 비잔틴과 오스만 제국의 왕족이 살았던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의 한양이라고나 할까? 여행지도에는 하바아라느역(공항)에서 제이틴부르크까지 지하철을, 제이틴부르크에서 술탄아흐메트까지 트램을 타야 된다고 나와 있었다. 1.5리라를 지불하고 지하철을 탔다. 여행 전 읽었던 여행 후기를 통해 ‘혹여나 더럽고 냄새가 나면 어쩌나?’하는 고민을 갖고 있었지만 지하철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조용했다.

제이틴부르크 역을 내려 트램을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영국에서 탔던 아늑하고 조용한 트램을 기대했지만 실제로 이스탄불의 트램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각종 악취와 앉기 힘든 의자 등이 즐비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램을 타고 가면서 보이는 이스탄불의 정경에 매료된 나머지 악취와 의자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마침내 술탄아흐메트 지구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술탄아흐메트 자미, 일명 ‘블루 모스크’이다. 술탄아흐메트 자미는 이 부근 지역(술탄아흐메트 지구)의 이름이 될 정도로 구시가지의 주요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자미’란 사원에 가까운 개념으로, 터키의 자미는 천장의 돔과 천장 위의 뾰족한 첨탑이 그 특징이다. 술탄아흐메트 자미는 6개의 첨탑이 있는데 이것이 만들어진 배경이 참 재미있다. 술탄아흐메트 1세는 자미의 첨탑을 황금(터키어로 Altun)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설계한 사람이 6(터키어로 Altu)으로 잘못 이해해 6개의 첨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스탄불 건축 양식은 그 천장이 멋스럽다. 자칫 밋밋하기 쉬운 천장에 웅장하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해 관광객의 눈길을 빼앗는다. 특히 술탄아흐메트 자미의 돔에는 250개가 넘는 작은 창이 있어 이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를 밝게 비출 때면 사방이 황금으로 가득 찬 느낌이 들 정도이다.


▲ 술탄아흐메트 자미의 천장


술탄아흐메트 자미를 빠져나오면 바로 보이는 곳이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비잔틴 제국을 몰락시킨 오스만 제국의 메메트 2세가 가장 먼저 찾았다는 아야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제국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 때 처음으로 건설하기 시작한 아야소피아 성당은 360년 콘스탄티누스 2세 시대에 완성됐다. 이후 자연재해 및 침략 등 숱한 재화를 겪었다. 532년부터 537년까지의 재건 작업 통해 그 화려함을 회복했으나, 이후 정복자 메메트 2세의 명령으로 이슬람교의 성전인 모스크로 탈바꿈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유적지이다. 건물의 내부에는 높은 천장과 벽면의 장식들이 즐비해 있다. 금색과 검정색이 혼합된 이슬람 문양과 칼리그래피(한자처럼 모양을 낸 그림 문자) 앞에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아야소피아 성당까지 구경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발걸음을 옮기는 장소가 있었다. 오스만 왕조의 400년을 고스란히 담은 톱카프 궁전이다. 1453년에 비잔틴 제국을 함락한 술탄 메메트 2세는 1460년 톱카프 궁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술탄들이 증축을 거듭한 끝에 현재 70만m²에 이르는 광대한 궁전이 완성됐다. 그 규모가 엄청나다보니 내부를 돌아다니다보면 여러번 길을 잃을 정도로 상당히 복잡하다. 출입문을 통과하면 `식물원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정원이 보인다. 정원에서 건물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10분을 헤맨 끝에 간신히 하렘(Harem, 여성의 방)에 들어섰다. 아라비아어의 하람(성역)과 하림(금지되었다)을 어원으로 하는 하렘은 톱카프 궁전에서 가장 큰 볼거리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환관의 방이 나온다. 환관은 하렘의 경비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건물에 들어서기 직전 이곳에서 나는 다소 ‘황당한’ 경험을 겪었다. 한 여성에게 신발을 신어도 되냐고 질문을 했는데 그 여성이 ‘쌩’하니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여성에게 질문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이곳은 이슬람의 규율에 따라 여성들은 남성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입구를 지나면 중국 도자기 등을 전시해 놓은 황제의 방과 시내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의의 탑이 있다.

하렘을 나와 향한 곳은 보물관 하지네 오다스이다. 이곳은 역대 술탄들의 보물과 의상 등을 모아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오면 꼭 봐야 할 전시물이 있다. 바로 3개의 커다란 에메랄드와 시계가 딸려 있는 황금 단검이다. “우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이 외에도 술탄의 식사를 담당하는 요리실과 술탄과 장군들이 회의를 했던 아르즈 오다스 등 2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정경들이 가득 차 있다.


▲ 톱카프 궁전의 입구


톱카프 궁전을 나오니 벌써 5시가 가까워졌다.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5시까지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에 취한 나머지 끼니를 챙길 틈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여태껏 외국인 관광객만 만났을 뿐 실제 터키인은 그리 많이 만나 보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사람도 고픈 지금, 갈만한 곳은 딱 한군데 뿐이었다. 바로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이다. 그랜드 바자르란 말 그대로 ‘무척 큰 시장’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대문, 동대문 시장 쯤 될까?

이름에 걸맞게 시장은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수많은 사람들과 이국적인 물건들에 혼이 ‘쏙’ 빠졌다. 도자기, 카펫, 과자, 향신료, 금, 은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이곳을 여행할 때는 특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또한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동양인을 보면 열이면 열 모두 “알 유 꼬레아?”라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장의 터키인들은 상당히 친절했다. 물건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는 데도 이것저것 친절하게 소개를 해 주기도 하고, 또 필요한 물건이 있다고 말하면 직접 매장 근처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니 오후 7시. 아쉽지만 그렇게 이스탄불 여행은 끝이 났다. 하늘은 붉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루 만에 천년의 역사를 모두 느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여행을 마칠때 까지 장장 10시간이 넘게 걸어 다녔다. 평소에는 걷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10시간이나 걷다니…. 그만큼 이스탄불의 볼거리, 먹거리 등은 풍성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겠다. 이스탄불 ‘강력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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