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당신은 운동권인가? 비운동권인가? 둘 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회는 운동권이 아니면 비운동권이다. 그다지 반갑지 못한 구분이지만 이런 개념이 대학가에서 학생회를 이야기할 때 널리 쓰이고 있다.
지난해 총학생회의 선거 결과 117개 대학 중 40여 개 대학을 비운동권 학생회가 건설되었다 한다. 최근 5년 간, 자칭이 타칭이 비운동권 학생회는 전체의 30%를 상회한다고 한다.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어떻게 분류하고,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경계는 어떻게 성립되는가?
우선 생각나는 것이 기존의 이념적인 사상에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이다. 다시 말해 민족자주(NL), 민중민주(PD) 등의 이념적인 사상을 지향하느냐가 그 잣대가 된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기는 하지만 요즘의 경향을 보면 답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1999년 서울대 총학생회 ‘광란의 10월’은 비운동권으로 분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북 발해유적답사를 추진했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한창이던 1999년 4·11총선 때 ‘2000총선 대학생유권자운동본부’ 결성을 주도한 건국대, 상지대, 계명대 등의 대학은 당시 비운동권으로 분류된 대학이었다. 운동권 학생회의 이념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단지 이념에 대한 동의의 수준과 개혁을 위한 방안이 다를 뿐이지 이념과 사상이 갖고 있는 큰 뜻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필자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경계가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반목으로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운동권 혹은 비운동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운동권이라고, 비운동권이라고 낙인찍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한총련, 석 자에 경기를 일으키는 인물이 많이 있다. 소위 운동권 인사들은 “시대가 어느 시댄데”라는 말만 들으면 흥분하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회색분자로, 적색분자로 몰아가며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상대를 단편적으로 이미지화, 개념화시키고 이를 근거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신문이라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대학가 학생회 비운동권 바람] 총학생회 복지센터됐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이가 없었다. 책걸상이 모두 새것으로 교체된 것은 비운동권 학생회이기에 가능했다는 논리가 다세포 동물에게서도 나올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운동권 학생회는 복지에 신경을 쓴 적이 없다는 말인가? 이런 편견이 운동권 학생회와 비운동권 학생회를 만들어 낸다. 운동권 학생회도 학생 복지 신경 쓰고 비운동권 학생회도 사회에 관심이 많다. 어느 학생회나 학생이 주인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회는 두 종류이다.
국회의원 이부영씨가 대선 토론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정치권에서 수구보수라는 말은 쓰지 맙시다” 의도야 어쨌든 적대적인 개념 정의를 자제하고 생산적으로 토론하자는 대의에 공감한다. 우리도 이제 운동권, 비운동권이라고 이야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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