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울컥거리는 위장
다리 꼬여 흐느적거리는 관절들
정신 혼미해진 두개골이 흔들거리고
새벽녘 손님도 마다않는 화려한 번화가는
소리없이 캄한 바다 속으로 잠겨버린다

그물줄 서둘러 거두어 들이는 시장통 안 인적이 사라져도
응급실과 장례식장을 갖춘 최신식 병원에서는
야간 버튼도 친절히 달아두었다
- 김일용, 「돌다리 1번지」 중에서

집으로 배달된 지도 두어 달쯤은 족히 지났을 잡지를 뒤적이다가 김일용이라는 이름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이 낯선 이름의 시인, 이제 문단에 갓 얼굴을 내민다는 신인의 시에 왜 주목을 했을까? 우선 도시를 비유한 ‘위장’ ‘관절’ ‘두개골’ 따위의 시어가 주는 불편함이 그 첫 번째 이유였음을 숨겨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러나 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풍경을 처절하게 그려낸 시가 흔치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이 시편에 대해 한 번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도시가 어두워질수록 조명은 화려해진다. 그리고 조명이 화려해지는 만큼 우울감은 더해간다. 이 역설적 상황의 중심에는 자본이 있다. 바로 저 ‘시장통’이 바로 그러한 공간 중 하나리라. “그물줄 서둘러 거두어” 들인다는 저 시간, 군중의 신체는 점점 흐느적거리다가 “컴컴한 바다 속으로 잠겨버린다”고 시인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본의 위엄 앞에서 아프고, 그리고 숨 거두는지도 모르는 채 죽어가는 우리의 삶은 ‘최신식 병원’ 앞에서 다시 한 번 좌절한다. “야간 버튼도 친절히 달아두었다”는 저 시구, 특히 ‘친절히’라는 저 시어는 자본 앞에서 힘없는 서민의 냉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서글픔의 표현일 것이다.
박성필 (교양교직부 글쓰기교실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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