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어 굶는다?’ 당장 근처 대형마트에 들어서면 수많은 먹거리를 볼 수 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생산의 감소와 그로인한 가격 폭등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나라가 완전히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6.7%다. 거의 100%에 육박하는 쌀을 제외하면 나머지 곡물의 자급률은 형편없는 정도다.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하다보니 국제가격의 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그 중의 70% 가량을 몇몇 메이저 유통기업을 통해 수입하다보니 가격협상력도 떨어진다. 이들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린다하더라도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이다. 만약 지구상에 큰 재해로 식량위기가 발생한다면 식량가격은 어마어마하게 올라갈 것이고,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가 수출을 금지할 경우 식량의 원활한 수입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식량주권이다. 식량주권은 단순히 국내외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우리나라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식량자급을 이루는 것이다. 이미 많은 선진국들이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식량주권을 얻기 위한 노력 한가운데에 종자가 있다.

종묘회사가 건내는 달콤한 독약

종자는 그야말로 생명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생명활동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하다. 종자의 역할은 실로 다양하다. 자손을 퍼뜨리는 일을 하고 수천세대를 지나며 변해온 유전자정보의 저장소기능도 한다. 또한 다른 동물에게 에너지 공급원이 돼주기도 한다. 이렇게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종자가 식량전쟁의 무기로 쓰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20여 년간 몬산토, 듀폰, 신젠타 같은 다국적 거대 종묘회사들은 세계 각지의 종묘회사들을 인수합병해 왔다.

그 결과 그들은 현재 세계 종묘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 종묘회사의 대부분이 다국적 종묘회사로 넘어갔다.

그들은 무엇을 노리고 종묘시장을 장악하는 걸까. 목적은 간단하다. 바로 지구상의 모든 농민들이 자신들의 종자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종자의 가격을 올려 막대한 이윤을 얻으려 한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농민들에게 달콤한 독사과를 건낸다.

농민들에게 있어 유전자 조작을 거친 다국적 종묘회사의 종자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수확량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병충해에 강하기 때문에 손도 덜 간다. 생산력의 막대한 증가를 가져오는 유전자 조작 종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농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속에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말이다.


▲토종 종자를 판매하는 인도의 상점

그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방법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그리고 다시 그 콩을 심으면 또 콩이 나온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만한 자연의 진리이다.

하지만 미국의 농민들은 자연의 진리에 따를 수 없다. 바로 특허법 때문이다. 특허법은 식물체 전체와 종자, 세포, 유전자 같은 구성요소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재파종, 즉 수확한 식물의 종자를 다시 심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농민들은 자신이 수확한 종자가 아닌 종묘회사의 종자를 다시 구입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종묘회사에 종속되고 만다. 그렇다면 종묘회사의 종자가 아닌 재래 종자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종묘회사가 판매하는 유전자 조작을 거친 종자들은 거부하기에는 그 유혹이 너무 달콤하다.

또한 농민들이 수확한 농작물을 팔기 위해서는 특정 종자를 사용해야하는 처지다. 다국적 유통기업들과 연합한 종묘회사들은 농민들에게 자신들의 종자 사용을 강요한다. 농민들은 특정 회사의 종자를 사용해야만 유통기업들이 그들의 수확물을 시장에 유통시켜주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특정 종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수확한 종자를 다시 심어도 자라지 않거나 원래의 우수한 형질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종묘회사들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불임성 종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F1 종자’라 불리는 종자가 그것이다. F는 `filial generation`의 약자로 자식세대라고 번역할 수 있다. 즉 F1 종자는 ‘자식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1세대에서는 우수한 형질이 잘 나타나지만 이들의 자손 즉 2세대의 종자를 심을 경우 아예 발아가 되지 않거나 품질이 낮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농민들은 다시 종묘회사의 종자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몬산토를 비난하는 이미지

비대해진 종묘회사로 인한 폐해

지난 10년 동안 인도에서 자살한 농민만 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농민들이 생을 마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다국적 종묘회사인 몬산토의 행태가 꼽히고 있다. 몬산토는 농민들에게 해충이 발생하지 않게 자체적으로 독성물질을 분비하도록 유전적으로 변형시킨 Bt면화의 종자를 판매했다.

Bt면화는 처음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됐다. 수확량도 많고 병충해에도 강하니 수많은 농민들이 Bt면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재래 면화가 줄어들고 Bt면화가 보급되면서 서서히 종자가격이 상승했다. 그럼에도 Bt면화에 익숙해진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몬산토의 종자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비싼 종자를 구입하기 위해 농민들은 막대한 빚을 지게 됐고 그러한 힘든 생활에 지쳐 자살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종자가 널리 사용되면서 종의 다양성이 없어지는 것도 큰 문제다. 한 종류의 식량이나 종에 의존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 농약에 내성을 가지고 유전자 조작에도 끄떡없는 바이러스나 병해충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예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을 상기해보면 단일한 종이 가진 위험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온전한 식량주권을 위해

다국적 거대기업의 종자 독점은 우리의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종자의 상당수가 다국적 종묘회사의 제품이다. 팔기 위한 작물을 키우기 위해선 수확량과 병충해에 대한 내성이 뛰어난 F1 종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다국적 종묘회사가 이를 볼모로 횡포를 부린다면 농민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인도에서는 토종 종자를 지키기 위한 운동인 ‘나브다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은 토종 종자를 퍼뜨리기 위한 노력이다. 농민들은 종자를 받아 면화를 재배하고 그 씨앗을 받아 다시 면화를 키운다. 거대한 자본의 힘을 쉽게 물리치기는 힘들지만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농민들은 다국적 종묘회사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작물로 곡물자급률을 100% 채운다 해도 그 종자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면 식량주권은 흔들릴 수 있다. 토종 종자를 지키고 보급하는 것이 식량주권의 기반을 튼튼하게 할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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