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시인은 모반(謀叛)을 꿈꾸는 자이다. 그 모반의 대상은 문자 그대로의 나라가 아니라 때로 아비의 이름이 되기도 하며 때로 현실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현실을 운위하는 일조차 팍팍한 오늘의 문학 환경에서 우리 시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물어보기로 한다. 이즈음 김윤이 시와의 만남이 기쁜 이유는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오렌지를 “누가 저며놓았냐”고 묻고 있다. 모반을 꿈꾸는(?) 자의 저 능청스러운 물음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우리의 시선은 오렌지의 붉은 속살을 파고 들어간다. 거기에는 꽃이 피어 있고 생명줄이 부풀어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생명의 외부 현실은 참담하다. 잘바닥잘바닥 소리가 들리듯 물고기는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부레”라는 시어를 타고 오렌지의 속살과 외적 사태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 그 동시적이며 또한 대비적인 면모를 통해, 우리는 시인의 말대로 “슬픔은 여태 익지 않”아 파란 오렌지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참담한 오늘의 현실에서 그의 능청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어느 시인을 흉내 내어 나도 한 번 능청을 떨어보고 싶다. 오렌지는 파랗다, 아니 쓰다!

박성필(교양교직부 글쓰기교실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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