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봉의 소리

언제부턴가 매우 갑작스럽게 복지가 우리 사회의 중요 아젠다로 떠올랐다. 그래서 사회복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보편주의, 선별주의 복지와 같은 전문용어가 언론에서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내용없는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복지를 전공한 입장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현상만은 아니다. 시작이야 어찌되었건 복지라는 주제가 우리 사회 전면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영국은 복지를 사회적 시민권의 하나로 확립했다는 의미에서 복지국가의 모국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란 어떤 의미인가? 관련 학자들은 복지국가를 인간적 자본주의, 민주적 자본주의, 자본주의 위기의 해결사 등으로 부른다. Briggs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력의 역할을 수정하기 위해 정치권력을 사용하는 나라라고 정의하였다. 시장력의 역할이란 노동시장에서 자신이 투자한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확보한 소득분배를 의미하고, 수정한다는 것은 분배된 소득을 복지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으로 이전시키는 것, 즉 소득재분배를 의미한다. 예컨대 누진세율로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한다면 세금을 더 많이 낸 부자에게서 세금을 적게 낸 가난한 자들에게 돈이 이동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복지국가를 노동자계층의 전리품이라고도 말한다. 복지국가의 최대수혜자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이기 때문이다. 어떤 누구도 내 돈을 강제적으로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이러한 제도를 채택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작동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실시한 영국의 총선에서 노동당이 처음으로 제1당이 되었다. 이 노동당의 애틀리수상은 1947년 영국이 복지국가임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복지국가 형성요인 중 가장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은 국민들의 사회적 연대의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런던이 폭격을 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런던 외곽으로 피난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뜻밖의 빈곤상황을 목도하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또한 전쟁을 치루면서 함께 고생한 국민들은 상호 동질감을 느끼며 단합하게 되었다.

특히 복지에 대한 국가개입을 꺼려하던 중산계층의 경우, 전쟁을 통해 ‘위험의 불확실성’을 경험한 후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복지프로그램이 자신들에게도 ‘안전망’의 기능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총선에서 노동당의 손을 들어 주게 된 것이다. 이것을 노동자, 중산계층 간의 복지동맹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즘 한창 진행되고 있는 복지논쟁을 보노라면 우리의 사회적 연대의식의 현주소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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