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봉의 소리

런닝머신을 뛰면 앞으로 달려도 제자리에서 뛰게 된다. 경제사회에서도 성장은 하지만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뒤로 밀어내고 있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낡은 사회구조와 구시대적 가치관은 사회를 후진시킨다.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는 경제발전이 개인의 생산능력이나 자본의 크기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회의 구조, 국민의식, 가치관 등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이 경제성장과 함께 변해야지만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

필자가 요즈음 느끼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 사회가 지연, 혈연, 학연 등 연줄에 너무 매여 있고, 이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연줄 중심의 사회는 일반성과 투명성을 상실하고, 우물 안 개구리를 양산하는 사회이다. 어떤 사람은 연줄이 자연적 현상 아니냐고 말하지만, 자연적 현상이라고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엘리트들이 서로 연줄로 모두가 모두를 붙들고 있으면, 그 사회는 객관성과 도전정신을 상실하고, 퇴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많은 인터넷 사업들이 다국적 기업들로 발전해가고 있다. 특히 미국회사들이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이들은 단기간에 전 세계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직원으로 고용하고, 사업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이 가장 잘 발달한 한국의 기업들은 자본도, 인력도 충분한데세계로 뻗어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줄에 의존하는 의식구조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본다.

한국기업이 미국, 유럽 등 외국에서 그 사람의 능력만 보고, 지사를 맡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시장에서도 먼저 연줄을 찾으려고 한다. 연줄이 없는 사람을 신뢰하고, 같이 일 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해외시장 공략은 꿈꾸기 어렵다. 앞으로 한국기업들은 기술 개발, 제조, 판매 등에서 해외 투자를 확대시켜가야 한다. 세계 사람들과 협력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연줄의식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요즈음 정치권에서도 연줄사회의 폐단을 볼 수 있다. 연줄은 올바른 판단력과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약화시킨다. 미국이나 유럽이 연줄에 의존하는 사회라면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일의 메르켈 총리, 미국의 오바마는 지도자로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정권을 잡은 후에 그 사람의 과거를 묻지 않고, 오로지 능력만 고려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동독에서 성장한 메르켈 역시 서독에 아무 연줄 없이, 능력만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하면 선진사회에서는 조롱거리가 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연줄에 의존한 정치권은 자기 개발에 소홀하고, 시대에 뒤지는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다.

연줄에 의존하는 사람은 중풍환자와 같다.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연줄사회의 퇴치는 우리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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