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위험한 상견례’란 영화가 극장가에 개봉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영화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을 다룬 영화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지역감정은 우리를 그저 웃으며 감상할 수만은 없게 한다.

영화로 제작될 만큼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저변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같은 지역민에겐 동질감을 느끼고 다른 지역민에겐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남과 호남 간의 지역감정은 단순한 이질감만으로 설명하기엔 감정의 골이 깊다. 그렇다면 한반도 남단 두지역의 지역감정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일까.

지역감정의 원인과 촉매제

지역감정의 근본적 원인이 되는 시대와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최초의 영호남 지역감정은 삼국이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고대시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와 신라 간의 수많은 전투 속에 자연히 영호남 지역감정이 싹튼 것이다. 특히 6세기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의 성왕이 신라군에 살해당하고, 후에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당하자 두 지역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됐다.

그러나 먼 옛날부터 내려온 지역감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당부분 희석됐다. 임진왜란 등의 외침에 맞서 영호남이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고, 그에 따라 인구이동도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감정은 현대에 이르러 또 다른 양상으로 탄생하게 된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상황에 따라 영호남 지역감정을 이용하거나 고착화시켰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지역감정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제의 식민 정책에 의해 식량을 얻기 편한 호남지역은 농업지역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한 반면, 일본과의 교통이 편한 영남에는 여러 산업적 인프라가 구축됐다. 박정희 정권은 효율적 경제발전을 중시해 개발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영남지역을 토대로 경제개발 정책을 시행했다. 반면 호남지역은 개발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이로 인해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화돼 영남의 우월의식과 호남의 피해의식이 대립하게 됐다.

특히 1971년에 치러진 제7대 대통령선거는 지역감정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출마의 정당성 결여와 김대중이라는 막강한 라이벌로 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때 정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내세운 전략은 바로 지역감정 유발이었다. 이효상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당시 정권 세력은 호남출신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영남에 불이익이 갈 것이라는 말로 영남지역의 표심을 결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 역시 이번에 호남인이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며 호남의 단결을 촉구했다.

한편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정권의 유혈진압은 지역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신군부세력이 대부분 영남출신이었기 때문에 광주에선 “영남군인이 호남 사람 다 죽인다”는 유언비어가 퍼진 것이다. 결국 신군부의 광주탄압은 호남에 아물 수 없는 상처와 동시에 영남에 대한 분노를 남겼다.


지역감정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역감정은 인식의 문제다. 인식 속에 고착화된 특정 지역에 대한 미움과 편견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 해결돼야할 과제이다. 지금까지의 지역감정은 주로 정치적 사건에서 연유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행태를 그만두어야 한다. 지역주의에 기대어 표를 기대하기보단 전체 지역의 조화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적 개선으로도 지역감정의 완화를 이끌 수 있다. 지역의 영향이 적은 비례대표제 확대가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는 국회에 지역주의적 인사들의 비중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대표와 비례대표를 나누는 양당제 역시 고려해볼만한 제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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