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이 말은 이제는 아득히 잊어버린 국민교육헌장의 첫 문장이다. 태생이야 어쨌건 우리가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루고 있는 성과는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 유사이래의 최초요 최대의 것처럼 보인다. 해방 후 지난 66년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들은 오로지 잘살아야 된다는 신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 유전자는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뼛속 깊이 박혀있다.

다른 한편 소위 ‘역사적 사명’을 실천하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산업전선에 매달리다 보니 가족 간의 애정이 식어갔고, 성과주의에 인간됨이 매몰되어 갔다. 도시로의 집중은 농촌의 황폐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살기 좋은 도시의 비인간화를 촉진했다. 풍요와 성공은 예찬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은 하찮은 것으로 여겨져 갔다. 남녀를 불문하고 부끄럼 없이 외모 가꾸기에 몰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의 양상은 도처에서, 다양하게 발견되지만 이 모든 양상의 특징을 일갈하면 인간주의의 후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은 분명해 진다. 성과주의에 기초한 경쟁구도를 완화하고, 상대방의 불편을 조금씩 덜어 나누는 일이다. 배금주의 이외에는 갈 곳 몰라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스스로의 사명에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노력을 정치·종교·경제·교육 등 전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하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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