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라크 공격하다

미국의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이 벌써 열흘 넘게 지속되고 있다. 마치 레이저 쇼를 보는 듯한 CNN의 전쟁 중계에서는 12년 전 걸프 전쟁 때보다 한 층 업그레이드 된 신무기들이 매일같이 ‘쇼쇼쇼’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물론 미국에서도 반전 여론이 크게 일고있는 가운데, 미국이 모두 명분이 없다고 비판하는 이번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이 주장하는 이번 이라크 침공에 대한 명분은 아주 명확하다. 이라크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알 카에다를 포함한 테러 집단을 지원·옹호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태에서 후세인은 군사력이 강해지게 되면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를 공격할 것이므로 공격받기 전에 무력화(예방 전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라크 체제의 민주화라는 명분도 슬며시 끼워 넣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는 UN 사찰단의 사찰을 받아들였고 사찰 결과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 알 카에다와의 연계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도 없다. 게다가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그 나라를 침공한다는 주장 역시 어불성설이다. 결국 명분은 없다. 또한 공격당하기 전에 공격한다는 ‘예방 전쟁’은 일국의 자기 방어를 위한 경우와 유엔헌장 제7조에 의해 유엔 안보리가 무력 사용을 승인한 경우를 제외하고 무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제법에도 명백히 위배된다.
그렇다면 미국의 진짜 의도는 무엇인가? 이라크 침공이 있은 후, 국내 한 일간지가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가장 큰 목적에 대해 78.18%가 ‘유전 확보 등 경제적 이득’이라고 응답했다. 역시 미국의 가장 큰 목표는 대량살상무기도 후세인도 아닌 석유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미국의 중동산 석유의존도는 24%(2000년 현재)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2020년에는 50%에 이를 것이라고 미국 에너지부의 한 보고서가 밝힌 바 있다. 미국에서는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원유 공급선의 다변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라크는 현재 원유 매장량이 1,120억 배럴로 사우디에 이어 세계 제2의 규모이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 매장량도 2천2백억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2년까지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들은 이라크 석유생산의 3분의 2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1972년 이라크가 석유를 국유화하는 바람에 개발권을 잃어버렸고, 특히 1991년 걸프전 이후에는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이 대형 석유개발권을 따게 되면서 미국과 영국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승리해서 후세인을 몰아내고 친미정권을 수립한다면 미국과 영국은 유전개발권 확보에 유리한 위치에 서게되고, 계약체결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또한 이라크와 인접한 카스피해 유전확보에도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지금까지 이라크 석유개발권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끈질기게 반대할 만 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이라크 침공의 또 다른 목표가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장악력 확대라고 말하고 있다.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면 미국에게 언제나 말썽꾸러기였던 중동의 질서를 자국에게 유리하게 재편성할 수 있다. 이란의 반미정권을 교체해서 미국의 통제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감축해서 지금까지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테러지원,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손 볼 수 있다. 또한 테러지원 가능성이 높은 시리아와 리비아에 대해서도 비교적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해진다.
유전을 손에 넣고 중동을 손바닥 위에 놓아둔다면 ‘세계 질서를 안정시킬 의무’가 있는 미국의 군사·외교·경제적 인프라가 더욱 확고해 진다. 세계 질서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미국의 에너지 우위 체제에, 취약한 에너지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을 편입시킬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석유소비량 세계 6위, 석유수입은 세게 4위인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번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과와 그 후 새롭게 구축되는 세계질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와 군사안보가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복합 안보체계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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