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의 도입과 청량리의 등장
청량리와 서대문을 잇는 근대 전차는 1899년 5월에 운행을 시작했다. 서대문에서 출발한 전차는 도성의 중심지인 종로를 지나 청량리까지 도달했다. 당시 청량리는 서울이 아닌 고양군에 속한 시골이었다. 그럼에도 전차가 청량리까지 운행한 이유는 고종황제의 홍릉 행차 때문이었다.

홍릉은 명성황후의 묘로 지금은 남양주에 있지만 예전에는 청량리에 있었다. 고종황제는 틈 날 때마다 홍릉을 찾아갔는데 황제의 행차인지라 한 번에 소요되는 비용이 상당했다. 이를 알게 된 미국인 콜부란이 전차 개설을 제안하게 된다. 그는 전차를 통해 행차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백성들도 홍릉 참배를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며 고종황제를 설득했다. 고종황제는 근대문물과 도시개조사업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백성들의 홍릉 참배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도 전차 개설의 이유 중 하나였다. 이를 통해 반일의식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릉 행차를 위해 전차를 개설했지만, 고종황제는 전차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네모난 상자 모양의 전차가 답답하기도 했고, 상여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였다. 따라서 전차는 주로 백성들을 위해 운행됐다.

개통 직후 전차의 인기는 상당했다. 전차를 타면 외국 공사관과 궁궐, 상점들이 모여 있는 종로 거리를 지나 한적한 소풍지인 홍릉 주변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번 전차를 탄 사람들이 내리지 않아 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운행을 시작한 전차는 점차 서울의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잡아갔다.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저렴한 가격인데다, 서울과 그 주변의 유동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이 시행되면서,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서울로 몰려왔다. 도심에서 그들을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에, 지금의 청량리, 전농동, 제기동 같은 주변지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겼다. 전차는 가난한 사람들의 발이 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 1930년대 청량리역 역사(驛舍)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청량리 588
청량리 기차역은 1911년 10월 15일에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청량리역은 처음에는 평범한 역에 지나지 않았으나 1930년대 일제가 본격적으로 대륙침략을 시작하면서 주목받게 된다. 함경선과 도문선 등 물자 수송을 위한 철도들이 개설되면서 북쪽으로 향하는 철도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청량리역을 통해 물자 수송뿐만 아니라 금강산 여행이나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여행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가슴 아픈 여행이 더 많았는데, 만주로 떠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일제 식민지 하의 농업정책으로 인해 많은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됐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을 떠난 농민들은 간도행 열차를 타고 아무 연고도 없는 북쪽으로 떠나야 했다. 이렇게 이용객이 많아지면서 청량리역은 1938년 5월 1일 동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뀐다. 남경성역(현재 영등포역)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역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청량리역은 서울 동부지역에서 손꼽히는 기차역으로 알려지게 됐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청량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것으로 일명 ‘청량리 588’이라고 불리는 사창가가 있다. 지금은 성매매특별법에 의해 쇠락했지만, 한때는 청량리하면 제일 먼저 588을 생각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창가는 흔히 철도역과 근접한 장소에서 번창하기 때문에 청량리에도 역이 생긴 이후에 사창가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1938년 서울과 경주를 연결하는 중앙선이, 1939년 서울과 춘천을 잇는 경춘선이 생기면서 역 주변 사창가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 후 1960년대에 대표적인 사창가였던 종로3가에 대한 경찰의 단속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청량리 588은 더욱 커졌다. 단속을 피해 포주와 윤락여성들은 서울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됐고, 그 지역 중 한 곳이 청량리였다.


▲ 1930년대(위)와 현재(아래)의 청량리역 앞 광장 모습

낭만이 살아있는 경춘선
대학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MT가 있다. 누구나 친구들과 벅찬 마음을 안고 여행을 떠나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청량리에서 출발해 춘천으로 향하는 경춘선은 유난히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한 기차노선이다. 춘천, 가평, 대성리 등 많은 MT명소들로 향하는 학생들이 청량리로 몰려왔다. 경춘선은 70년대부터 본격적인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는지, 객차의 난간을 잡고 타는 사람도 있었고 열차가 고갯길을 오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대학생의 낭만을 상징하던 경춘선은 2010년 12월 20일 청량리발 남춘천행 마지막 열차인 1837호가 춘천에 도착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상봉역에서 춘천까지 이어지는 복선전철화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경춘선 기차 노선은 추억 속에서만 탈 수 있게 됐다. 청량리역 홍효기 역무팀장은 “경춘선이 전철로 바뀌어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지만, 춘천까지 가는 시간과 배차간격이 줄어들어 좋아하는 분들도 많다”며 전철화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경춘선은 전철로 바뀌었지만 춘천으로 가는 기차는 다른 모습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준고속열차 ITX-청춘이 그것이다. 청량리역은 지난달 개통한 ITX-청춘을 통해 춘천여행의 시작점이라는 상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사진_ 서울시립대 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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