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무리 뭐라 한들 그 당시에는 믿지 못했던 말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 모르는 수학문제를 언니에게 물어 볼 때마다 심심치 않게 들었던 말이 있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기억해, 벌써 다 잊어버렸지. 너도 수능 끝나봐라. 금방 잊어버릴 거야” 몇 년 동안 준비해서 본 시험인데 고작 2, 3년이 지났다고 그새 그걸 잊어버렸을까 나는 그런 언니에게 의심스런 눈빛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고 대학시절의 봄날을 즐기고 있는 내게 낯설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교회 동생이 “누나, 이 문제 알지? 가르쳐주라” 순간, 나는 언니가 수험생이었던 내게 결코 거짓을 고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그제서야 새삼 깨닫게 됐다.
이제 ‘취업’이라는 또 다른 수험을 준비하는 내게 사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선배들은 이런 말씀을 곧잘 하신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최고야.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거든” 선배들의 말씀은 과거에 언니가 수학문제를 모른다고 답했을 때처럼 ‘설마 나도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수험생 시절 언니와의 에피소드 때문에, 선배들의 말은 쉽게 지나치기가 어렵다.
직장인들이 자신의 업무와 적성이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또 다른 사춘기를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업’이 아닌 ‘직장’을 구한다는 슬프지만 수긍이 가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고려해 어떤 일에 일정기간 이상 종사하는 것을 ‘직업’으로, 사람들이 일정한 직업을 갖고 일하는 곳을 ‘직장’이라고 말한다. 만약 사람들이 직업보다 직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취직을 하다보면 자신의 적성을 살려 일하기란 쉽지가 않다.
한국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다양한 직업을 갖기보다 하나의 직업을 갖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곳인 직장보다 종사하는 업종인 직업에 중점을 두고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는 걸까. 아마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한국인들의 정서가 한 몫 한 것 같다. 주변사람들의 취업소식을 들을 때 “00가 인사팀에 붙었대”라기 보다 “00가 삼성에 합격했대”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어느 직장에 다니는 것이 더 궁금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우리들. 어쩌면 이런 시선들 때문에 자신의 적성보다 남들이 듣기에 창피하지 않은 직장, 본인이 말하기 부끄럽지 않은 직장에 들어가려 애쓰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들도 지금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직업이 아닌 직장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머지않은 미래에 분명 우리들도 후배들에게 취업에 대해서 조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 후배들에게 “나도 지금 네 시절에는 직장만 찾았어”라는 후회 섞인 말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으로 가득 차 “직장보다는 직업을 찾아. 네가 신나서 즐길 수 있는 일을 말이야”라고 말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오새롬 기자 dhdh695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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