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장개석 총통은 자신의 아들 장경국으로부터 핵무기 개발 계획을 보고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고 본토를 수복하려는 우리의 집념은 누구도 꺾을 수 없다. 하지만 중국 민족이 공멸할 수밖에 없는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발상은 용납할 수가 없다. 이것은 중국적이지 않다.” 핵은 말 그대로 공멸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대전제이다. 북한의 핵은 북·미간의 첨예한 대립을 불러오고 일본의 국군주의화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동북아 주변국들의 군비 확장을 불러오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이와 같은 동북아시아 핵무기 보유 반대의 근거들은 북한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남한, 일본, 대만의 핵개발의 경우에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이렇게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도 박정희 정권시절 자주국방이라는 이름으로 핵무기 개발계획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핵개발과 북한의 핵개발에는 묘하게 통하는 점이 있다.

우리가 핵개발을 시작했던 1970년 초기에 ‘아시아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닉슨 독트린이 발표됐고 주한미군 1개 사단이 아무런 협의도 없이 철수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 시작한 시점은 조·소 군사 동맹이 파기되고 공산권이 한창 무너지고 있던 1991년이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결국 힘의 축이 무너진 상황에서 외부적인 압박이 계속될 때는 약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안전 보장을 위해 핵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압박은 계속 되고 있다. 이란, 이라크, 쿠바, 수단, 리비아 등등의 소위 불량 국가 중 미국이 핵 선제 공격 의사를 밝힌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북한이 느끼는 공포심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이런 외부적 위험 요소의 제거가 병행되었을 때 가능하다.

미국이 정말 ‘북핵의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인 해체’를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북한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약속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과거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의 선 핵포기 이후 미국이 지키기로 한 북한의 국가 승인 및 사회 체제 인정, 경제 제재 철회, 경제 원조, 선제 공격 원칙 폐기 중에 하나라도 지켜진 것이 있는가? 북한의 인내심이 9년이나 계속 됐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대단하다. 아무리 균형 감각을 가져보려고 해도 적반하장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6자회담에서 명확하게 결정된 것은 회담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이번 회담은 비가시적인 성과만을 남겼다. 이제 북핵 문제가 평화라는 단어 아래 어느 정도 극단적인 대립의 양상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다. 아쉬운 부분이 많음에도 이번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마주선 북·미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끈질긴 대화와 타협으로 북핵 문제가 옳은 방향으로 정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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