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영화사를 살펴보면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포레스트 검프>, <하얀 전쟁>, <눈먼 자들의 도시>, <블레이드 러너> 등은 소설을 영화화한 대표적인 예들이다. 배우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이라는 명예를 선사한 영화 <밀양> 또한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 원작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블레이드 러너>는 SF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명작으로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 필립 K. 딕의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1990년(왼쪽)과 2012년(오른쪽)에 두 편의 <토탈 리콜>로 재탄생됐다.
지난달 15일에 개봉한 영화 <토탈 리콜(2012)> 또한 필립 K. 딕의 단편소설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소설이 쓰여 진 시기는 1966년으로 영화와 원작 사이에는 반세기에 가까운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또 다른 영화인 <토탈 리콜(1990)>이 있다. 헐리우드가 사랑한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영화로서 어떻게 재창작됐을까?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원작소설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영화화되지 않은 작품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정도인 필립 K. 딕의 단편 중에서도 수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요 소재는 ‘기억 조작’으로 두 편의 <토탈 리콜> 역시 원작의 설정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주제와 작품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 구성에서 원작소설과 영화는 큰 차이를 보인다.

원작소설에서 주인공인 ‘더글라스 퀘일’은 화성 여행을 간절히 소망하는 소시민으로 그려진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퀘일은 기억을 조작해주는 회사인 ‘리콜(Rekal)’에서 화성 여행에 대한 추억을 심으려한다. 하지만 이미 퀘일은 화성에 간 적이 있었고, 이 기억과 인위적으로 삽입한 기억이 충돌하면서 퀘일은 혼란에 빠진다.

원작소설에서 퀘일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진실된 기억이고 거짓된 기억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퀘일의 삶은 점점 파괴돼 간다. 원작소설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기억 조작이라는 SF적 소재를 통해 긴박감 있게 전개해 나간다. 철저히 퀘일의 시선에만 맞춰져 있는 소설의 서술 시점도 독자로 하여금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든다. 원작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인 무너져 내리는 자아를 향한 치열한 고뇌는 필립 K. 딕의 다른 작품에서도 천착해 형상화 되고 있다. 작품 말미에서는 개인의 파괴가 세계의 붕괴로 확장되는 우울하면서도 냉소적인 결말을 통해 필립 K. 딕 특유의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 <토탈 리콜>의 아이콘이 된 돌연변이 여자

전설로 기록된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
원작소설을 가장 먼저 영화화한 감독은 SF영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폴 버호벤이었다. 폴 버호벤은 원작에 사회적 메시지를 더해 영화 <토탈 리콜(1990)>을 내놓았다. 원작과 달리 주인공인 ‘더글라스 퀘이드’는 혼재하는 기억에 혼란스러워 하다가 직접 화성으로 건너간다. 그곳은 독재자인 ‘발로스 코하겐’과 이에 대항하는 반란군들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퀘이드는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코하겐이 부당하게 공기를 독점해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란군에 몸을 담는다. 코하겐을 무찌른 퀘이드가 화성 전역에 공기를 공급해 사람들을 구원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진실에 대한 혼란을 끊임없이 겪는 주인공의 심리는 여러 영상기법을 통해 충실히 재현됐다. 그러나 영화가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권력에 의한 생존권의 침해와 소수자에 대한 핍박이다. 화성의 환경으로 인해 생겨난 돌연변이와 공기 생산 장치는 원작에는 없는 요소로써 영화에서는 갈등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폴 버호벤은 소설의 단순한 영화화 차원을 넘어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냈다.

▲ <토탈 리콜(2012)>의 콜로니(왼쪽)와 홍콩의 구룡성채(오른쪽).

뛰어난 그래픽 기술로 재탄생한 두 번째 <토탈 리콜>
최근 개봉한 렌 와이즈먼 감독의 <토탈 리콜(2012)>은 구성과 주제의 측면에서 원작소설보다는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1990)>에 가까운 작품이다. 두 번째 <토탈 리콜(2012)>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화성에서 지구로 바뀌었으며 이에 따라 중요 자원은 공기가 아닌 거주 가능한 토지가 됐다. 갈등을 이루는 축 역시 화성 공화국과 반란군에서 영국연방과 식민지인 ‘콜로니’로 수정됐다. 영국연방의 수장인 ‘코하겐’은 토지를 얻기 위해 콜로니의 주민들을 말살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퀘이드’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또 다른 점으로는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화려해진 액션 장면이 있다. 또한 미래도시의 이미지를 뛰어난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구축했다. 구룡성채를 연상케 하는 구조의 콜로니는 오리엔탈리즘이 물씬 풍기는 공간으로 재창조됐다. 콜로니의 사람들은 종이우산, 기모노 등 동양적 복식을 갖추고 있다. 세계근현대사에서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던 동아시아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했다.

SF영화지만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설정을 수정한 부분도 눈여겨 볼만하다. 중요 자원이 공기가 아닌 토지로 설정됐으며 돌연변이와 같은 요소는 삭제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점이 오히려 영화를 밋밋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기억 조작’을 통한 세 가지 시퀀스

필립 K. 딕의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소설이 쓰여 졌던 해로부터 24년 후에 영화화 작업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22년 뒤에 또다시 영화로 재탄생했다. 원작소설과 최근 개봉한 <토탈 리콜(2012)>은 무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적 간극을 갖고 있다. 세 작품은 같은 소재로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서는 정체성의 상실과 혼란에, 폴 버호벤은 소수자들에 대한 권력의 폭력을 화성이라는 배경을 통해 낯설게 그려냈으며, <토탈 리콜(2012)>은 눈을 뗄 수 없는 액션과 화려한 그래픽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세 작품의 특성은 제각각이지만 기억의 불안정성과 권력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은 모든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대주제로 작용하고 있다.

김홍진 기자  |  bj2935@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