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55년만에 정부 차원의 진상 보고서 채택

정부의 솔직한 사과 있어야 4·3 상처 치유 될 수 있어

“아픈 상처를 반세기가 넘도록 가슴 속으로만 안고 살아온 유가족과 제주도민 여러분께 간절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3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희생자 범도민위령제’에 참석한 고건 국무총리 추도사의 일부분이다. 이 추도사는 “4·3 중앙위원회에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진압 과정에서 무고하게 주민들이 희생됐다는 점과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추모사업 추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라고 이어진다. 지난 3일 제주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고건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4·3 위령제가 봉행됐다. 그러나 기대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보다 앞선 지난 달 29일에는 4·3이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인권침해’라는 내용의 4·3 진상보고서가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다. 4·3진상보고서는 4·3의 발발 원인을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제주사회에 긴장상황이 조성되고, 남로당 제주도당이 이러한 긴장상황을 5.10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그 시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선거관리 요원과 경찰 가족 등 민간인까지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라고 지적한다. 주목할 것은 “1948년 11월부터 9연대에 의해 자행된 강경 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지고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주민 집단 총살사건인 ‘북촌사건’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마을 주민 400명 가량이 2연대 군인에게 총살당한 사건” 등이 기술된 부분이다. 이러한 보고서의 내용은 4·3 사건을 강경 진압작전과 비정상적인 군법회의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유린 행위’로 규정한다는 것에서 그 의미가 크다. 4·3 진상보고서는 4·3특별법에 따라 2001년 1월 구성된 4.3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이 2년 여의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희생된 신고자의 수만 1만 4천28명, 미확인 희생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희생자의 수는 2만 5천∼3만명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 뒤 열린 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라고 발언한 사실이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밝혀졌으며, 당시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정보기록에 의해 미군은 이들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대량학살’하도록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보고서의 채택으로 그동안 엄청난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 살아왔던 제주도민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었던 위령제였다. 그러나 기대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를 대표한 사과는 유보되었다. 4·3 유족회와 도민연대 등 4·3 관련 단체들은 4·3진상보고서 채택에 따른 환영성명을 통해 정부를 대표한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도민에 대한 사과를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하고 요구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당시 제주도 유세에서 “현재 진행중인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국가 권력이 잘못한 점이 드러난다면 4.3 영령과 제주도민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할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사실을 재확인하고 의미를 재평가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며, “6개월의 이의기간이 있으므로 시간을 갖고 검토해 국가 차원의 입장 표명은 내년 4·3사건 추모식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4·.3 유족회를 비롯한 30여개의 시민 사회단체들은 지난 달 31일 성명서를 통해 “제주 4·3 진상보고서에 4·3이 국가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임을 명확히 규정하면서도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사과 표명을 유보하는 데는 분노에 가까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정부의 잘못에 대해서 현 정부가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은 그 ‘잘못한 점’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이다. 과거 정부에 대한 사과라고 해서 그것이 정부의 정통성이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스스로 4·3을 조사하고 그 잘못을 인정하고도 솔직한 사과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반세기 넘게 제주도민을 짓눌러왔던 4·3이라는 상처는 노무현 대통령이 위령제에 참석하고, 정부가 고개 숙여 사과하는 그날이 되어야 비로소 아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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