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타오른 대장간의 불길, 공동묘지 덮은 자리에 석양으로 남아있어


산비탈엔 들국화가 환-하고 누이동생의 무덤 옆엔 밤나무 하나가 오뚝 서서 바람이 올 때마다 아득-한 공중을 향하여 여윈 가지를 내어 저었다. 무덤 옆엔 작은 시내가 은실을 긋고 등 뒤에 서걱이는 떡갈나무 수풀 앞에 차단-한 비석이 하나 노을에 젖어 있었다.....(중략)

▲ 금호의 옛 지명인 무수막이 아직 남아있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진 김광균의 시 <수철리(水鐵里)>다. 이 시에는 성동구 금호동(金湖洞)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과연 그가 본대로 금호동은 노을이 어울리는 마을이다. 동네가 응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덕에 세상이 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질녘, 마을 꼭대기에 올라 멀리 한강과 그 지류가 흐르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마을과 함께 아름다운 석양에 젖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금호동 일대는 한성부 남부 두모방 수철리계(水鐵里契)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금호정(金湖町)으로 됐고, 1943년 성동구에 속했으며, 해방 직후인 1946년에 금호동으로 바뀌었다.

금호동은 옛날엔 ‘무쇠막’ 혹은 ‘무수막’으로 불렸는데, 이곳에 무쇠솥을 만들어 나라에 바치는 대장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는 왕십리 배추장수와 함께 물쇠골 솥장수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 금호공원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해방 전후 금호동은 시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 지역이 공동묘지였다. 지금은 그 자리에 금남시장과 금호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묘지들을 볼 수 없게 됐지만, 마을 노인들의 기억 속엔 여전히 김광균 시인이 그렸던 그 모습이 남아있다. 골목슈퍼 앞에서 조용히 햇빛을 즐기던 노인에게 공동묘지에 대해 묻자 그는 “지금은 없어. 예전에는 논골 옆으로 쭈욱 묘지가 있었지. 지금은 거기에 초등학교가 섰어”라고 말하며 옛 마을 풍경을 떠올렸다.

금호동에서 가볼 만한 곳은 금호공원이다. 금호동 꼭대기에 위치했기 때문에 산 위로 부는 바람이 차갑지만 주민들은 이곳을 많이 찾는다. 아파트보다는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오밀조밀한 주택들이 모여있어, 아늑한 분위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뿐 아니라 동네 길고양이들도 많이 찾는 금호공원은 아기자기한 산책로와 운동기구들, 놀이터가 있어 가볼만한 곳이다.

지하철을 타고 왕십리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신금호역에서 내리면 금호동을 찾아 볼 수 있다. 올 겨울 따뜻한 야상차림에 카메라를 들고서 금호동 언덕에 올라 겨울 석양을 담아보자. 누가 알겠는가. ‘수철리’ 마지막 부분처럼 적막한 황혼아래 별빛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런지.

▲ 금호동 꼭대기에선 한강을 볼 수 있다


글·사진_ 이철규 수습기자 27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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