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대의 국어국문학과 폐지 결정을 둘러싼 세간의 논란이 예사롭지 않다. 피해당사자인 해당학과 학생들이 농성에 돌입한 것은 물론 안도현 시인, 조국 교수 등 학계와 문화계 유명 인사들과 일반 누리꾼들까지 비판과 성토 대열에 가세했다. 평소 배재대는 김소월, 주시경 선생 등 민족어문학계의 걸출한 위인들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해왔고 지금도 그 분들의 이름을 단과대학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학교라 충격을 넘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것 같은 배신감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섣부른 민족주의적 정서에 호소해 학교를 비난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에 어긋난 행동으로 보인다. 이번 일을 무작정 학교 탓으로만 돌리기엔 오늘날 우리의 아카데미즘을 짓누르고 있는 정글 자본주의의 압력이 너무나 과중하기 때문이다. 배재대는 이번 결정의 이유로 대학의 경쟁력 강화라는 ‘신자유주의 가문의 보검’을 휘둘렀다. “재학률이 떨어지고 취업이 잘 안 되는 학과”로 국문학과가 찍혀 유사학과와 통폐합하기로 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배재대는 교과부가 취업률 등을 지표로 한 대학평가에서 올해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선정됐다.

사실 이런 이유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그 동안 수도권, 비수도권을 막론하고 적지 않은 대학에서 철학 등 인문학 계열 학과들의 통폐합 내지 폐과가 자행된 것도 다 경쟁력 강화를 내세운 탓이었다. 물론 ‘한 번 학과는 영원한 학과’가 될 수 없다.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특정 학문은 명멸하기 마련이고 또 그래야 한다. 문제는 학문의 경쟁력이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이다. 오늘날 정글 아카데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과 이의 작동을 강제하는 폭력적 국가기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시장과 국가가 떠들어대는 대학의 경쟁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비즈니스 역량에 불과하다. 이번 배재대 국문학과의 폐지 결정이 한없이 서글픈 이유는 오늘도 생존에 혈안이 되어 국가기관의 경쟁력 평가에 알아서 기어야 하는 우리네 대학의 슬픈 자화상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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