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는 ‘지혜 또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삼포 세대, 88만 원 세대, 민달팽이 세대…….

이 신조어들은 우리 세대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이 신조어에 따르면 지금의 20대는 연애·결혼·출산을 모두 포기하고, 비정규직으로 88만 원의 임금을 받으며, 자신의 집 없이 떠돌고 있다. 말만 들어보면 불우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세대다. 단지 80, 9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끝자락으로 내몰린 것이다.

실제로 오늘의 청춘은 고달프다. 학기마다 날아오는 등록금 고지서의 액수는 줄어들 줄 모르며 늘 취업에 쫓기고 다니던 학과가 난데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삼포세대라고 해서, 88만 원 세대라고 해서, 민달팽이 세대라고 해서 포기와 순응이 합리화되고 당연시될 수는 없다. 스스로에게 당한 패배와 사회로부터 당한 굴종을 그럴 듯한 신조어 뒤에 가리는 것은 지극히 패배주의적인 발상이다. 우리 세대를 수식하는 부정적 수식어들이 오히려 청춘들의 머릿속 깊은 곳에 피해의식을 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더 높은 연봉을 주는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성공의 잣대가 되고, 돈 안 되는 꿈을 좇는 일은 말 꺼내기조차 부끄러운 읊조림이 돼버렸다. 우리 스스로조차 도전하는 동료를 향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라고 손가락질 하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기만행위의 원인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자위를 한다. 이 과정에서 신조어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좋은 거적이다.

이제는 이 거적을 걷어내고 꿈이 없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할 때다. 부정적 수식어 뒤에만 숨어있다면 이 수식어는 뒤에 올 청춘들이 그대로 물려받게 될 것이다.

우리네 삶은 일정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20대 중후반에 취업을 하고, 3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하며, 30대 후반쯤 되면 아이를 낳고 전셋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린다. 부모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40대를 아이들 뒷바라지로 보내고 나면 은퇴를 바라봐야 하는 나이다. 어차피 모두가 엇비슷하게 살 것이라면 한 번쯤 무언가에 투신해볼만 하지 않을까?

청춘. 몇 번쯤 실패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존재다. 신조어가 만들어낸 피해의식은 던져버리고 주체로서의 지위를 되찾자. 연애와 결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포기할 이유 따위는 없다. 사회가 삼포세대 따위의 딱지를 우리의 등 뒤에 붙여줬다면 팔을 들어 우리 스스로 떼어버리면 그만이다.

김홍진 기자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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