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놈들은 하이에나처럼 어디 꼬투리 잡을 만한 것 없나 하면서 들쑤시고 다니는 놈들이 아니냐”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다. 누군가는, 어쩌면 적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도 저 말을 아주 부정할 순 없다.

기사 쓸 때 가장 힘든 점은 학내 구성원에게 쓴소리를 하는 기사를 써야하는 것이다. 입사한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나도 그동안 비판기사를 많이 썼다. 그때마다 나를 하이에나 보듯 하는 취재원의 냉랭한 목소리, 의심의 눈초리를 여러번 느꼈다. 그럴 때면 내가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미안해야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적으로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을 굳이 시간 내서 찾아가 인터뷰를 받는 게 나라고 달가울 리 없다. ‘기자의 의무는 사회 비판이다’ 여러 번 들었지만 실천하려면 그만큼 고통이 따른다. 비판 기사를 쓸 때면 ‘내가 취재한 이 사람과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아주 소인배가 아닌 다음에야 쓴소리 한 번 했다고 반목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인터뷰를 받아낸 우리 기자들은 신문에 내기 전에 내용 좀 보여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곤 한다. 보기만 하겠는가. 기사 내용을 고치고 싶어 그러는 것이다. 물론 그 마음은 이해한다. 혹시라도 불리한 기사가 실리지 않을까 걱정이 돼 그렇겠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실제로 기사를 보여주게 되면 수정요청도 빈번히 발생한다. 이때 우리 기자들은 사관(史觀)의 입장이 된다. 역사기록이 후대에 기록으로 남듯이 신문 또한 우리대학의 역사로 계속 남으며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이다. 사관은 수정된 사실을 기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그들이 목숨을 바쳐 역사를 수정하려는 권력에 대항해 기록을 지켰던 이유다.

기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쓴소리를 싣더라도 거짓을 싣지는 않는다. 아니,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다. 우리대학의 구성원들은 이 점을 양해해줬으면 한다. 자신에게 하는 쓴 소리가 두려워 숨기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이철규 기자 27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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