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평가공화국이다. 학업성취도평가를 받는 초등학생들부터 자산평가를 받는 연금수혜자들까지 전 국민이 각종 평가시스템에 노출되어 있다. 평가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일등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대학사회는 바야흐로 평가의 계절이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평가를 받아야 하고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수업 평가나 재임용, 승진관련 성과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학교 차원에선 그야말로 ‘운명적인’ 평가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교육역량강화사업, 학부교육선진화선도대학사업, BK21플러스사업 등 대학, 대학원 연구 및 교육역량 제고를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사업 선정과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 및 학자금대출 제한대학 지정 등 국가 주도의 대학퇴출 프로그램 가동을 위한 혹독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한정된 자원이 자유시장이 아니라 권력기관의 평가에 따라 분배될 경우 분배의 정당성은 평가의 정당성에, 그리고 평가의 정당성은 평가 결과에 대한 모든 평가 대상자들의 전폭적인 수용가능성에 의존한다. 무한경쟁적 평가시스템에 신음하고 있는 학생과 교수들의 옹색한 처지도, 돈줄을 쥔 권력기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대학의 비참한 현실도 분명 슬픈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줄서기를 강요하고 결국엔 일부를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 평가시스템의 본질적 기능인 것을. 그래서 평가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존 롤즈의 주장대로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이익이 돌아가는, 그리하여 평가대상자 모두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동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가장 정의로운 평가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더욱 현명하고 현실적인 대응책일 듯 싶다. 오늘 이 땅의 모든 대학구성원들, 아니 모든 평가대상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정의로운 평가공화국 대한민국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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