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의 데자뷰가 심심찮게 나타나는 요즘, 정말로 그 때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 하나가, 그것도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일어났다. 최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과 역사유물론을 강의한 강사가 한 학생으로부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반미사상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국정원에 신고된 사건이다.

일견 경악스럽기보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일과성 ‘해프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신고기관인 국정원도 아직까지 별다른 조처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보도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개콘’의 한 코너처럼 감상하기엔 그 웃음의 뒷끝이 개운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유신독재자 아버지에게서 정치철학을 배웠다고 과시하는 대통령의 나라에서 앞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어쩌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많은 사건들 중 하나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유신과 5공 시절 반독재 성향의 수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혀 대학에서 추방된 불행한 역사의 이면에는 독재정권의 반공 내지 반북 이데올로기 공세와 국민 상호간 불신, 감시, 밀고 시스템의 가동이 있었다는 기억을 우리는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국정원에 신고를 한 학생은 1학년생이라고 한다. 그간 입시에 찌들려 아직 현실 사회를 보는 안목을 기르지 못한 탓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종북과 반미는 ‘죽을 죄’이고 자본주의 비판은 공산주의 찬양이라는 수구적 단견에 빠진 ‘20세기 세력’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한, 제2, 제3의 유사 학생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불행을 막는 길은 우리 모두 합심하여 거꾸로 간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는 길밖에 없다. 21세기 사회는 ‘열린’ 민주사회, 곧 대학을 포함한 모든 공론 영역에서 이른바 ‘적대 사상들’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무제한 허용되는 사회다. 사상은 사상과 투쟁할 때 비로소 적대 사상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법이다. ‘칼’로써 사상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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