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은 지난 5일 홍대 주차장거리의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숨 쉬는 도서관에 참여했다. 숨 쉬는 도서관에서 준비한 12명의 사람책 중 김주혜 씨의 ‘이 광활하고도 지루한 세계에서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은?’과 마수경 씨의 ‘어느 평범한 깨순이의 당연한 물음, 대학에 가지 않으면 뭐하고 살까?’를 선택해 읽어보았다. 소소하면서도 특별한 그들의 이야기. 지금부터 그들이 들려주는 한 권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 편집자 주 -

 

사람책 도서관, 정체를 밝혀라!

흔히 ‘도서관’ 하면 책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책장에서 종이책을 꺼내 대출하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람이 책이 된다면 어떨까? ‘사람책 도서관’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사람책 도서관에서는 그 사람의 인생이나 경험 자체가 한 권의 책이 된다. 사람책 도서관은 독서의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사람과 대화를 함으로써 ‘사람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사람책을 통해 직접 이야기를 듣는 한편, 사람책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사람책과 함께 ‘숨 쉬는 도서관’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 제9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 마련된 ‘숨 쉬는 도서관’은 사람책 도서관의 또 다른 말이다. 숨 쉬는 도서관에서는 주로 마포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람책이 됐다. 숨 쉬는 도서관 행사를 3년째 진행하고 있는 박은주(37)씨는 “지역 주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지 고민을 했어요. 그러던 중 한 방송 작가가 영국의 사람책 도서관을 보고 쓴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읽게 됐죠. 다른 사람의 삶을 읽으면서 새로운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꿈과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역이 소통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사람책 도서관인 ‘숨 쉬는 도서관’을 기획했습니다”라며 숨 쉬는 도서관을 기획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사람책에게 듣는 인문학 이야기

이번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주제는 ‘만인을 위한 인문학’으로 숨 쉬는 도서관도 그에 맞춰 ‘삶으로 듣는 인문학’을 주제로 잡았다.
박은주 씨는 “인문학은 결국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요. 그래서 사람책 도서관의 방향을 ‘삶으로 듣는 인문학-내 삶을 바꾼 질문들’로 선정했어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분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우리 주변의 이웃 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책과 같은 형태로 다듬기 위해 사람책 역할을 해주실 분들을 먼저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라고 말했다.

사람책 도서관에 독자로 참여한 김형수(25)씨는 “사람책을 읽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었어요. ‘내 삶을 바꾼 질문들’이라는 주제처럼 자기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져보고, 또 이에 솔직하게 대답해야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인 것 같아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야기꾼 수수가 들려주는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

 
첫 번째 사람책인 김주혜(37)씨는 본인의 이름보다 ‘수수’, ‘모변’이라는 별명을 쓰는 것을 더 좋아했다. ‘수수’는 대학 시절 풍물패를 했을 때 곡식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주혜 님’이라고 부르던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자 ‘수수 님’이라고 바꿔 불렀다. 김주혜 씨는 “풍물패를 하던 동기를 만나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유랑농악단을 시작했어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한 대학에서 진행하는 문화학 협동과정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이 활동들을 통해서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지역 라디오 방송인 마포 FM <야성의 꽃다방>에서 얘기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김주혜 씨는 ‘어떻게 나답게 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러한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김주혜 씨는 자신이 가진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졌다. 이에 독자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김주혜 씨는 “살다보면 항상 같은 고민에 직면하게 되고, 삶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지루하고 무료한 악순환이 너무나 싫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우주를 보기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그녀의 인생에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여성운동가였던 그녀는 차별에 시달리다가 타지에서 세상을 떠난 한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와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삶’에 주목했다. 성매매 여성,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 가해자, 여성예술가, 가출청소년,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사도마조히스트, 거식증환자, 장애인, 정신병자, 양심수…….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김주혜 씨는 “이들의 삶이 저의 삶과 연결되고 이들의 몸이 저의 몸을 관통하는 것으로 봤어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더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니 나답게 사는 법을 알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김주혜 씨가 집을 소유하지 않고 수입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자 독자들은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다. 김주혜 씨는 “무언가에 묶여 살게 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물질적 가치에 묶이다 보면 다른 세계를 찾는데 방해가 돼요. 그래서 물질적 가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주혜 씨는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물질적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 세상의 사람들이 서로 지켜보며 공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김주혜 씨는 독자들에게 이번 만남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른 환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감을 나눌 것을 권유했다. 그 일환으로 테이블에 앉은 독자들에게 이메일 주소를 공유하는 것을 제안했고 독자들은 모두 각자의 이메일 주소를 노트에 적었다. 또한 독자들의 사연과 신청곡을 받아 자신이 진행하는 <야성의 꽃다방>에 전해주면 꼭 읽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김주혜 씨는 마지막으로 유랑농악단을 하면서 알게 된 민요를 부르며 독자들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나만의 삶을 찾은 한 깨순이

 
마수경(19)씨는 농업학교인 풀무환경농업의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 독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학교라는 틀에 박힌 삶이 너무나 싫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저는 초중고 12년 내내 학교에 가방을 들고 가 하루의 절반을 책상과 보냈죠. 그러다 이런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자 독자 중 한 명이 야간자율학습에서 몰래 도망간 경험을 이야기했고 마수경 씨는 크게 웃었다.

그녀는 이어 “선생님은 진도만 나갔고 숙제와 수행평가는 진정한 배움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야간자율학습때문에 밤 늦게까지 남아 기계적으로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푸는 것도 짜증났어요”라며 마음 속에 갖고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독자들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던 불만이라며 크게 공감했다.

마수경 씨는 이런 삶 속에서 스트레스와 불만이 쌓여가는 것은 본인에게 독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를위해 어머니에게 조언을 구했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풀무환경농업’을 소개해줬다. 이 말을 듣고 그녀는 이제껏 농사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독자는 나라도 고민했을 것 같다며 공감을 표했다. 곰곰이 자신의 상황을 생각해봤다는 마수경 씨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유지하면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똑같은 삶을 살 것 같았어요”라며 그 당시의 느낌을 말했다. 이처럼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던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결국 풀무환경농업을 방문하게 됐다.

마수경 씨는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드넓은 농촌을 보자 ‘여기서 나를 찾을 수 있겠구나’라는 외침을 들었다고 한다. 도전과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마수경 씨의 머릿속을 스쳤다. 결국 풀무환경농업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어렵게 담임선생님을 설득해 야간자율학습에서 빠졌다. 마수경 씨는 “인근 대학의 중국어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어를 공부했고, 주말에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라고 말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자기계발 시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녀는 현재 풀무환경농업을 다니면서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는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찍은 사진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줬다. 독자들은 비닐하우스 앞에서 웃고 있는 마수경 씨의 모습에 감탄했다.

마수경 씨는 “농사는 정말 힘들지만 저는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진정한 행복을 찾았어요. 땅에서 자라나는 생명을 보며 그것을 ‘저’의 성장과 비교했죠”라며 농촌에서의 삶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설명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걷는 흔한 길인 ‘대학’을 포기하고 농촌으로 가  자라는 새싹이 됐다. 독자들은 마수경 씨가 앞으로 쓸 삶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글_ 서주훈 기자 joohoon5@uos.ac.kr
사진 및 그림_ 숨 쉬는 도서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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