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예전부터 학생총회와 대의원회가 참석률 미달로 무산되는 등 날이 갈수록 우리대학 학생 자치는 무너져 내렸다. 결국 준비 과정부터 파행을 겪은 이번 선거는 투표율 미달로 인해 선거 불성립이라는 부끄러운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학기 초부터 우려하던 학생들의 무관심 문제가 막상 이런 결과를 빚어내니 ‘대학 정치판’에서는 기성 정치를 빼다 박은 듯 서로 네 책임이라며 책임 소재를 떠넘긴다. 선본들은 선관위와 학생들의 무관심 탓을, 선관위는 선본과 학생회 탓을, 학생들은 학생 대표들 탓을 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라.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학생들의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입바른 소리지만 모든 학생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은 결국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말과 같다.

먼저 학생 대표직은 누가 강제로 시킨 일이 아니라 바로 학생 대표 스스로가 선택한, 학생들의 지지로 얻은 무거운 직책이라는 점을 각 대표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대표들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머리를 싸맬 책임,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자신들의 사업을 설명하고 참여를 유도할 책임,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판과 비난을 감수할 책임이 당연히 자신들에게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대표들이 학생들의 무관심 탓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일이 된다. 학생 대표는 학생들을 탓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교 역시 지금의 학생자치 실태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7개 단과대에서 2개 단과대만 선본이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학생들은 학생 대표직이 경제적으로도, 명예로도, 학생자치 실현이라는 대의에 있어서도 의미가 퇴색돼 가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학교는 학생 대표들이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수단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어야 한다. 한 학기에 일정 정도 학점을 인정해 줄 수도, 학생회 행사에서 발급하는 공결서가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수들과 협의할 수도 있다. 또한 학생대표들에게 체계적으로 리더십 교육을 지원할 수도 있다. 이처럼 꼭 보수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학생회 활동을 장려할 수 있는 방안은 더 많을 것이다.

정말이지 지금의 사태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너무도 당연해 할 필요도 없는 말이지만 지금처럼 이 말이 절실한 적이 있을까 싶다.

이철규 기자(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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