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연아의 마지막 피겨스케이팅 무대가 펼쳐졌다.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마쳤으나 결과는 아쉽게도 은메달을 그쳤다. 금메달은 무대에서 점프 연기를 펼치는 가운데 두 발로 착지를 해버린, 명백한 실수를 저지른 러시아 선수가 차지했다. 때문에 모두들 결과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난리였다. 김연아에게 금을 되찾아주자는 서명운동이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명망 있는 전, 현직 피겨스케이팅 선수들 역시 김연아가 금메달이었어야 했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김연아가 제일 좋은 무대를 펼쳤다는 사실을 다른 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인정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하지만 정작 이 상황에서 가장 분노해야 할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반응이 차가웠다. 비유적으로 말해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리는 것처럼 쿨병에 걸린 사람들이 뜨겁게 달궈진 반응을 계속해서 식히는 꼴이라고나 할까. 쿨병이란 무슨 일이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뭐 어쩔 수 없지’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단어다. ‘김연아가 제대로 하지 못했고, 러시아 선수가 받을 만 했다’는 관심 유발형 쿨병과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걸 어떡하냐고, 이런 결과가 나올 걸 진작에 예상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무관심형 쿨병 등 쿨하다 못해 오싹한 이 반응들은 김연아를 둘러싼 상황과 관련해 확 끓어올랐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쿨병은 현대사회가 낳은 병폐다. 개인주의에 빠져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든 현대사회이다 보니, 질책이나 꾸짖음을 통해서라도 관심 및 애정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 갈수록 용기를 잃어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 자신을 맞춰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 결과가 바로 쿨병인 것이다.

쿨병은 점점 타인과 공감하기를 거부하는 현대인의 단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주관적인 문제라면 모를까 객관적인 문제를 두고서도 각자가 자기의 생각만으로 주장해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며, ‘난 쿨해서 이런 행동, 말을 할 뿐이야~’라고 하면서 남이 받는 상처에 대해선 다들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요즘의 분위기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관심을 끄고, 실패가 두려워 처음부터 실패자로 살고자 하며,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기 싫으면서도 자신의 감정만은 공감을 얻길 바라는 이와 같은 모순적인 행동들은 삶이 각박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리라. 전염성 강한 이 쿨병에서 벗어날 필요가 우리에게는 분명 있다.
 

정수환 기자  iialal9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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