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하십니까’가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작년 겨울 게시된 대자보 한 장은 많은 사람들을 동요시켰다. 그 대자보는 사회 문제에 소극적이기만 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펜을 들어 그간 쌓여왔던 불만을 남김없이 털어놓도록 했다. 하지만 3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때의 열기는 남아있지 않다. 무엇이 그때의 열기를 식게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안녕들하십니까(이하 안녕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간 안녕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지난해 12월 10일 고려대학교 후문에 한 장의 대자보가 붙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이 대자보는 철도노조원들의 직위해제, 국정원의 선거개입사건 등에 대한 불편함을 여과 없이 담고 있었다. 사람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그래서 다들 안녕하십니까?”라는 이 대자보의 마지막 물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반응했다. 전국 대학들의 게시판은 ‘안녕하지 못하다’는 메시지로 가득 찼고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부터 학부모, 직장인들도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지 못한 이유는 다양했다. 등록금 때문에 안녕하지 못한 대학생들도 있었고 국정원 선거개입사건 등 정치 현실에 대한 불쾌함 때문인 사람도 있었다. 혹자는 여성문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멀리서 대자보 릴레이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점차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조희준(성균관대 2)씨는 “공대생으로서 우리 단과대 사람들은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대자보를 붙인 이후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신문을 읽기 시작하는 등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자보는 특정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각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자유롭게 펼쳐내도록 유도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사람들의 행동은 대자보를 작성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12월 14일 고려대 후문에서는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성토대회를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글을 통해서만 안녕하지 못한 심정을 드러냈던 사람들이 직접 모이기 시작했다. 각지에서 성토대회나 대자보 문화제와 같은 집회가 열렸다. 몇몇 사람들은 즉석에서 대자보를 작성하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자보 백일장’을 개최했고, 안녕하지 못한 대학생들을 위해 전국 각지의 대학 내 부조리를 알아보는 암행어사단이 구성되기도 했다.

대자보 릴레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했다. 사회비판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는 대자보 릴레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들은 게시된 대자보를 반박하는 또 다른 대자보를 붙였다. 그 과정에서 게시된 대자보를 훼손하고 대자보 게시자를 모욕하는 행위가 벌어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장길남(중앙대 2)씨는 “지인이 대자보를 붙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빨갱이는 다 죽어야 된다’는 폭언을 했다”며 씁쓸해 했다. 이충석(연세대 2)씨 또한 “대자보를 찢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반박 대자보를 붙여 담론을 형성하면 좋았을 것”이라며 몇몇 사람들의 경솔한 행동을 비판했다. 한편 경향신문 기자인 조형국(28)씨는 “대자보를 훼손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자신들은 대자보를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권리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다”며 흥미로워 했다. 이처럼 대자보 한 장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안녕하지 못한 대다수가 잠잠해진 현재, 이유는?

최하영(고려대 4)씨는 연이은 대자보 붙이기로 뜨거웠던 지난 연말과는 달리 조용해진 현재에 대해 아쉬움의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한때 안녕들 페이스북 페이지에 26만여 개의 ‘좋아요’가 찍혔지만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직접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이번엔 이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할까’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며 사람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아쉬워 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대자보 릴레이에 참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안녕들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안녕들이 특정 세력의 정치적 활동으로 변질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우리대학 학생인 A씨는 지난해 12월 학생들이 정치참여에 소극적인 현 상황을 비판하고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하지만 “주현우 씨가 노동당 당원이라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이 활동들이 정치적 의도가 담긴 활동이 아니었는지, 우리가 그의 정치활동에 이용당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충석 씨는 현재 안녕들이 진보적 성향으로만 나아가는 점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안녕들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들이 한 쪽 성향만 지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충석 씨는 “안녕들은 태생적으로 ‘누가됐든 하고픈 말을 한다’는 방식이었다.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들 또한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현재와 같은 진보적 대화의 장이란 하나의 방향만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를 포용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녕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사회운동의 전선에 적극적으로 나와야만 한다는 주장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과도한 참여의 강요는 사람들을 떠나가게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조형국 씨는 “애초에 첫 대자보에는 ‘우리가 나서서 바꿔보자’라는 메시지는 없었다.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고 동조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서동휘(철학 11)씨 또한 “대자보의 목적이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조용한 모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현실적인 상황 탓에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 나오는 것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안녕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우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참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최하영 씨는 “사회참여라는 것이 사실 좋은 이미지를 주는 활동은 아니다”라며 사회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지적했다. 장길남 씨는 “이런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현재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에 임하고 있는 사람들이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장길남 씨는 사회운동에서 주로 쓰는 용어를 순화하자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으로 “투쟁, 노동 등 사람들이 괴리감을 가지는 단어가 있다. 이런 작은 부분부터 교체해 나간다면 궁극적으로 사회참여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형국 씨는 안녕들의 활동이 사회참여에 집중하기보다는 우선 ‘이야기의 장’으로 발전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첫 대자보가 어떤 움직임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성을 띤 것은 아니었다. 또 대자보 붙이기에 동참한 사람들은 자기 안에 쌓여있던 말들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에게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형국 씨는 “안녕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안녕들이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 남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발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의 부추김 없이 작은 행동이라도 직접 행해야 된다는 것이다. 최하영 씨는 이번 대자보 릴레이와 이전에 존재하던 사회적 움직임의 가장 큰 차이점을 일반 사람들이 주체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영 씨는 “안녕들이 몇 명의 ‘영웅’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움직임이었던 만큼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조형국 씨 또한 “적극적인 소수가 그렇지 않은 다수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줘야 한다는 발상은 우습다. 자신이 안녕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가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장길남 씨도 “앞으로의 안녕들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집회 참가 등의 거창한 활동보다는 친구들과의 토론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했으면 한다”라며 일반인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글·사진_ 김준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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