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라는 말이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를 뜻하는 비속어로 1970-80년대 많이 쓰였으나 요즘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자조(自嘲)할 때 애용하는 말이 되었다. 심지어 이공계 출신 연구원이나 교수들까지 ‘공돌이’를 자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싼 값에 막 써먹고 버리는’ 우리나라 이공계 인력시장의 황폐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이공계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석상에서 창조경제를 위한 공대 개혁을 주문했다고 한다. 골자는 교육과 연구가 이론 중심에서 현장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으로, 대통령은 이를 남녀간의 연애에 비유, “대학이 기업에게 잘 보여야 한다면 치장도 잘 하고 애인(기업)에게 줄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나 정부, 기업이 하나같이 대학을 직업훈련원 정도로 여기는 천박한 인식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지적하지 않겠다. 이공계의 연구, 교육에서 산학협력과 양질의 노동력 배출이 중요한 점은 굳이 대통령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잘 알고있다. 문제는 왜 지금 이공계가 겪고 있는 이 지난(至難)한 현실의 탓을 ‘연애’ 운운하며 전부 대학에만 돌리느냐다. 4년 이상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다른 전공의 배 이상 공부를 했음에도 양질의 직장은커녕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는 대다수 ‘공돌이들’의 슬픈 인생에 정부와 기업은 정녕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이공계 출신 대통령이 진정으로 이공계 생들의 미래를 책임지려 한다면 지금이라도 공대 개혁 운운하기 전에 이공계 노동시장을 축소, 왜곡하는 재벌 중심의 부의 편중을 해소하고 친기업적인 불완전고용 확산 시도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뒤에선 노동시장의 왜곡 및 경쟁을 조장하면서도 앞에선 대학 개혁 운운하는 대통령과 정부, 기업의 양면성을 이 나라 ‘공돌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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