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기준으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개국 1000일을 맞았다. 숫자가 주는 묵직함이 크다. 미디어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지면 매체가 방송시장에 개입할 수 있냐를 두고 오랜 논쟁이 있었던 것에 비해 종편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순탄하다. 오는 11월 재승인을 앞두고 있는 MBN을 제외한 종편 3사는 지난달 3월 재승인 심사를 통과하며 그 입지를 보다 공고히 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TV조선, 중앙일보의 jtbc, 동아일보의 채널A, 매일경제의 MBN 네 매체가 개국한 이후 방송시장은 그들의 말처럼 ‘다양화’되고 ‘선진화’됐는가. 보도프로그램과 예능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종편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손석희가 JTBC의 뉴스9 앵커로 발탁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흔히 종편 뉴스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인상은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종편 뉴스에는 대개 편향적이며 잘 알려지지 않은, 흔히 우리가 뉴스에서 볼 수 없는 얘기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서든, 알 필요가 없어서든 종편의 뉴스거리는 대부분 새롭고 자극적이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는 북괴가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를 문제 삼는다. 사실 관계 자체를 전면 부정하면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패널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스스로 ‘세월호 구조 과정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인터뷰를 검증 없이 뉴스에 내보내기도 한다. 종편 뉴스에서의 논란은 굵직한 것만 꼽아 봐도 이 정도다. 그럼에도 이런 프로그램들은 뉴스라는 이름으로 합리성을 얻는다. 공정성이나 정확성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의 뉴스이다. 공공의 이익과는 더더욱 멀다. 종편은 화제성을 위해 자극적인 말들을 일삼으며 우리가 기대하는 뉴스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종편은 무엇을 보도하는가 - 자극적인 소재 선정

종편은 지난 2011년 출범할 당시 논란이 됐던 것처럼 여론 형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종편의 출범으로 지면 매체가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창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기존에 보수 성향을 갖고 있던 이 매체들은 방송에서 역시 보수층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뉴스만을 보도하고 있다. 다수의 중장년층 시청자들을 기반으로 보수층의 여론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선물로 램프를 받았다는 사소한 일상이나 김정은이 눈썹을 밀었다는 등 일반 국민이라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소재도 종편에서는 뉴스거리가 된다. ‘형광등 100개를 킨 아우라’라며 특정 인물을 칭송하는 듯한 문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편향적인 가치 판단이 쏟아진다.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는 ‘유대균이 체포 당시 치킨을 시켜먹은 흔적이 있다’는 소재를 보도하기도 한다. 단편적인 현상에 해석을 덧붙이고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림으로써 보수층의 관점을 대변한다. 이런 보도들은 기존의 지상파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다양한 여론을 반영한다는 본래 취지를 실현시키지 못했다.


종편은 어떻게 보도하는가 - 인물중심으로 재해석한 스토리텔링 뉴스

뉴스의 소재가 다르다 보니 형식 역시 기존의 뉴스들과는 다르다. 종편은 인물중심으로 뉴스를 구성하고 전달한다. 예컨대 북한에 대한 뉴스를 김정은의 행동을 바탕으로 보도하는 식이다. 종편들이 이런 형식을 취하는 데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사건에 대한 경과를 설명하는 것보다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도시사회학과 남기범 교수는 “종편의 뉴스들은 사실과 그럴싸한 추측을 함께 섞어 기정사실화하거나 이슈 거리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 낸다”며 종편 뉴스의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러한 뉴스 형식은 어떤 문제의 원인을 개인이라는 작은 범위에 국한시킨다. 세월호 사고를 유병언이라는 한 개인에 초점을 두고 책임을 묻는 식이다.

스토리텔링 형식의 뉴스에서는 사실 관계보다 흥미성이나 이해도가 더 중요시된다. 남 교수는 “정치나 경제 뉴스는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내용을 스토리텔링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낸 뉴스들은 사건의 경과에 대해 요약적으로 전달하는 지상파 뉴스에 비해 사건 전반에 대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중장년층의 시청자들에게서 호응을 얻는 이유다. 한번 종편의 뉴스를 쉽고 편하게 느끼게 되면 매체의 정치적 성향이나 사실 관계에 크게 개의치 않고 꾸준히 종편을 시청하게 되는 것”이라며 스토리텔링 뉴스 진행이 갖는 효과에 대해 언급했다.


종편은 왜 보도‘만’ 하는가 - 보도프로그램에 의존하는 종편 채널

종편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대부분을 보도프로그램으로 편성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보도프로그램의 제작비가 가장 싸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예능의 경우 섭외비 등의 이유로 제작비가 편당 억대를 호가하지만 보도프로그램의 경우 자사 신문의 정치부장 등을 섭외해 다양한 얘기를 나누기 때문에 비교적 싼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다. 패널들의 친절한 해설이 덧붙여 진 새로운 뉴스 형식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긍정적이었다. 이러한 호응에 부응하기 위해 종편은 보도 및 시사 프로그램을 중장년층이 가장 TV를 많이 시청하는 저녁 시간대에 편성했다. 이로 인해 종편은 일정 부분 고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부수적으로 광고 수입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광고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확보가 돼야 자본에서 자유로워지고 보다 공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현재 종편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드라마나 예능을 위한 제작비도 넉넉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보수층이 호응할만한 내용의 보도프로그램이 편성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종편이 출범할 당시 방송의 다양화라는 가치를 내세운 만큼 채널의 발전을 위해 고민이 필요하다”며 종편의 방향을 재고해야 함을 지적했다.
 

지난달 16일 JTBC <히든싱어3> 방송 이후 여러 연예 뉴스에서 “이선희 ‘소주한잔’에 임창정이 감동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다. 바로 다음 주에 방영된 이선희 편은 시청률 7.1%로 지상파 프로그램을 통틀어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유명 가수의 모창을 웃음거리나 개인기로 가볍게 다루지 않고 팬과 가수의 만남을 따뜻하게 그려내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인기몰이 중인 종편 예능

<유자식 상팔자>, <아궁이> 등 다른 인기 예능프로그램들도 시청률이 4~6% 수준까지 상승했다. 1% 미만에 머물렀던 초기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높은 수치다.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8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에 <비정상회담>, <마녀사냥>이 오른 것 역시 종편 예능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종편 출범 초기만 하더라도 대중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지 못했던 종편 예능프로그램들이 이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는 최근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비정상회담>의 공식 주제가다. 패널들 간에 토론이 과열된 상황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분위기가 반전된다. 다 같이 손을 잡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서로 간의 격앙됐던 감정은 해소되며, 그런 다음 ‘화합’과 ‘평화유지’를 위한 토론이 재개된다. <비정상회담>은 외국인들이 패널로 등장해 한국의 문화에 대해 얘기했던 기존 ‘외국인 예능’의 한계를 극복했다. 11개 국가에서 온 20·30대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가 아니라 청년들의 일반적인 고민들에 대해 얘기한다. 다른 문화권의 사고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얘기한다는 점에서 <비정상회담>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참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종편 인기의 이면, 선정성

<비정상회담>보다 먼저 종편 예능프로그램의 선두에 섰던 건 <마녀사냥>이었다. <마녀사냥>은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대중들에게 종편 예능프로그램의 인지도를  높였다. 하지만 <마녀사냥>은 방송이 계속될수록 선정성과 자극성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도시사회학과 남기범 교수는 “종편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도덕적인 포장 없이 날 것 그대로의 얘기가 오간다. 시청자들에게는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방송이 기본적으로 추구해야하는 공익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종편의 예능프로그램은 시청률을 위해 프로그램의 기획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될 만한 특정 갈등 상황을 소재로 가져오기도 한다. 고부 갈등처럼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유도한다. 한편으로는 북한과 관련한 소재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해 시청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긴 하지만 그 소재를 재현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극적인 내용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 채널A <웰컴 투 시월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거리만을 확인하는 식이다. 또한 JTBC <김국진의 현장박치기>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말을 여과 없이 방송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화제성만을 추구하는 여러 종편 예능프로그램에서 도덕성이나 공정성이란 찾아보기가 힘들다. 남 교수는 “지상파 예능프로그램들은 단순한 재미 외에도 시청자들에게 바람직한 가치를 함께 전달하려 한다. 종편 예능프로그램들은 화제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자극적이기만 할뿐 갈등을 해소하거나 화합을 이끌어내는 등의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비정상회담>에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이 보이지만 공익성은 여전히 종편 예능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작년 기준 종편 4사의 통합 적자는 3000억에 육박한다. 적자를 극복하고 방송사를 안정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광고 수입이 절실하다. 광고주를 확보하기 위해선 시청률이 잘 나와야 한다. 결국 시청률에 종편의 생존 여부가 달려 있는 것이다. 남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의 독과점을 막고, 여론 창구를 다양화시킨다는 명목 아래 종편이 출범했지만 현재까지는 기대를  빗나간 느낌이다. 광고를 확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제작 및 편성에 치우쳐 많은 시청자들의 실망을 샀다”며 “최근 IPTV와 스마트폰 콘텐츠의 발전으로 TV 방송 광고 시장은 점점 축소되고 있는 추세다.

그 와중에 종편까지 출범하여 광고 수입을 확보하기 위한 방송사들의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정된 방송 광고 시장 안에서 지상파와 종편 모두 결국 만족할 만한 광고 수입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종편 프로그램이 더 이상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지상파 역시 이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상파마저 광고 자본으로부터 독립성을 잃고 종편과 함께 공멸할 가능성도 있다”며 앞으로의 방송 시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조예진 기자 yj951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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