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을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사람들은 가을철에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독서의 계절이란 말은 책 읽는 사람이 없어서 출판계에서 만들어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독서 생태계가 훼손된 현실이다. 요즘에는 서점에서 책을 직접 읽어보고 신중하게 선택하는 독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책을 살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독자의 주관이나 출판사의 서평이 아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은 베스트셀러와 비인기도서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독서 생태계 파괴를 불러오는 것들

최근 몇 년간의 한국 도서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는 바로 ‘열풍 현상’이다. 석학의 방문 소식과 관련해 특정 도서 매출액이 급증하는 것과 한국사회에 불었던 힐링 열풍이 도서시장에도 적용된 사례가 그 예다. 2010년 베스트셀러 1위에 이어 2011년에도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른 『정의란 무엇인가』는 석학의 방문이 출판 시장에 열풍을 불러온 대표적인 예다. 미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판매 부수는 채 10만부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30만부 이상이 팔렸다. 이는 우리나라 도서시장이 책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저자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석학의 방문과 관련해 일시적으로 책 판매가 급증한 사례는 꾸준히 있어왔다. 셸리 케이컨 교수의 방한과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판매가 급증한 사례, 슬라보예 지젝 교수의 방한과 『멈춰라, 생각하라』가 몇 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사례들이 그 예다. 최근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렀던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역시 석학의 방문과 관련해 판매량이 늘어난 도서에 해당한다.

도서시장을 휩쓴 열풍을 불러오는 것은 석학의 방한 뿐만이 아니다. 사회에서 주목을 받았던 주제도 도서시장의 열풍을 이끈다. 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핫했던 단어 중 하나는 ‘힐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유행어처럼 쓴 힐링은 노래의 제목이나 TV 프로그램의 제목에도 등장할 만큼 그 인기가 대단했다. 도서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청년들을 힐링하기 위해 나온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11년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휩쓸었다. 당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대학생이 가장 많이 받은 선물로 뽑혔다. 힐링 열풍은 2012년에도 이어져 예스24, 반디앤루니스, 알라딘 등 3사의 베스트셀러 1위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힐링 에세이를 다시 한 번 올려놓았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아프니까 청춘이다』 모두 2011년 짧은 간격을 두고 화제가 된 도서들이지만 베스트셀러가 된 과정은 전혀 다르다. 두 책은 장르에서부터 내용까지 어떠한 잣대를 들이대도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없다. 독자들이 선호하는 책의 종류가 급격히 바뀐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도서시장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독서율이 높은 독서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전체 출판시장에서 소수의 베스트셀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베스트셀러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공존하지 못하는 사태가 나타나는데 이와 같은 현상을 ‘독서 생태계가 훼손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독서 생태계는 훼손돼있다. 베스트셀러 이외의 책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장르별 신간 비율은 화제가 되었던 장르로 쏠리는 경향을 보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영향을 받아 2011년과 2012년에 쏟아지던 자기개발서들은 이를 방증한다.


‘부지런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독자들 늘어나야

최근의 이러한 출판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미디어셀러’다. 미디어셀러란 TV나 영화 등과 같은 미디어에 노출된 이후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2014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순위 1위인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대표적인 미디어셀러다. 이 책은 출판된 2009년도에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등장하며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 외에도 베스트셀러 2위인 정여울의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은 항공사의 광고, 베스트셀러 3위 강신주의 『인생수업』은 저자의 TV출연 후에 화제가 된 책들이다. 『겨울왕국 무비스토리 북』 역시 영화 <겨울왕국>의 후광을 업은 미디어셀러의 대표적인 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위원회 정책개발팀 정관성 팀장은 미디어셀러에 대해 “드라마, 영화, 스마트폰 등이 여가 활동에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해당 매체에서 이슈가 되는 책들로 쏠린 결과”라며 “매체활용의 편향이 독서편향으로 이어졌다. 앞으로도 출판시장에서 미디어가 갖는 영향력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 추이를 살펴보면 그 흐름을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다. 화제가 되는 책들은 유명 석학의 방문이나 미디어 매체의 향방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 비난을 샀던 출판업계의 사재기 관행도 ‘일단 베스트셀러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꼼수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독자들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책을 사야 한다. 미디어나 열풍에 휩쓸리는 장르 선택은 출판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비인기 장르들이 설 자리를 없앤다. 독서 생태계가 다양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수 장르를 지지하는 독자들의 주관이 필요한 것이다. 정 팀장은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 역시 국민들의 낮은 독서율과 관련이 있다. 도서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 틈을 타 미디어가 ‘게으른 선택’을 대신하고 있다. 독서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된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책을 사야 한다. 직접 서점에 가 자신의 주관에 따라 책을 선택하고 이를 추천해주는 문화가 정립된다면 소외받는 장르의 책들에 대한 관심도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독서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형 기자 no1control@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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