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프라이드>

▲ 남편과 남편의 애인 올리버의 행복을 빌어주는 실비아
공연장 입구에는 ‘공연시간: 180분’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짧지만은 않은 시간, 늦은 평일 저녁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연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게 가능할까 걱정이 앞선다. 자리에 앉아 무대를 살펴보다 배우 목소리로 들려오는 안내말에 미소가 지어진다. 핸드폰 전원을 끄고 헛기침도 두어 번. “세 시간 동안 여러분과 이 극장 그리고 무대 위 배우, 우리는 역사를 갖게 됩니다”라는 배우의 말에 괜히 자세도 한번 고쳐 앉게 된다.

연극은 과거와 현재 두 시점을 오간다. 2014년의 필립, 올리버, 실비아는 마치 1958년의 동명의 세 사람이 환생한 것처럼 나란한 삶의 궤적을 걷는다. 연극 속 세 사람의 관계와 대사 속에서 우리는 반백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 동안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사회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찾아볼 수 있다. 동성애가 금기로 여겨지던 시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정하는 올리버. 그리고 올리버를 통해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필립. 사회가 가르쳐준 대로 이성애자처럼 살아왔고 결국 실비아와 결혼까지 한 필립에게 올리버는 불안함과 두려움 그 자체였으므로 1958년의 둘에게는 스스로를 인정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 2014년, 필립과 올리버가 데이트하는 곳은 성적 소수자들의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리는 런던의 길거리다. 이 퍼레이드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프라이드’를 세울 수 있게 됐고, 그 역사를 기록해나갈 수 있게 됐다.

누군가는 이 연극을 그저 동성애에 관한 퀴어물이라 평가할지도 모른다. 가볍게 생각하고 보면 연인 관계의 필립과 올리버가 등장해 다투고 화해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그저 그런 로맨스물이라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세 사람과 우리 사회의 성장에 관한 얘기다. 기존에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연극들이 동성애자들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동성애자들이 사회의 편견을 어떻게 이겨내는지를 중심으로 다룬 것과 달리 <프라이드>는 실비아라는 제3의 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를 어떻게 바라보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연극 <프라이드>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동성애자들이 자부심을 가지게 된 역사, 그들을 인정해 준 우리 사회의 역사에 대한 얘기다.

동성애가 성적 도착이자 정신질환으로 여겨지던 시절, 많은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연극에 등장하는 1958년의 필립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용기를 내 이곳을 찾았냐는 담당 의사의 질문에 필립은 답한다. “그 사람을 잊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잊으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요” 그에 대한 의사의 답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다. “다들 그렇지 않나요” 정말 우리도, 그들도 사랑할 때는 다 똑같이 “다들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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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사진_ 연극열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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