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머리가 완성되길 기다리며 가볍게 꺼내든 잡지. 그런데 잡지 읽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블랙, 레드, 실버 등 모든 색깔을 영어로 쓰는 것은 물론 보디, 셰잎 등 외국어표기법에 맞지도 않는 단어들이 난무한다. 이렇듯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한국어가 있음에도 영어 사용을 남발하는 문체를 일각에서는 유명 패션지 보그(Vogue)의 이름을 따 ‘보그체’라 부른다.

분명 한글로 써 있지만 잡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한국어와는 다른 언어체계가 필요할 것만 같다. 단순히 패션 용어라기엔 지나치게 외국어를 ‘선호하는 것’ 같은 지금의 잡지. 아무리 패션 용어가 영어와 프랑스어 위주라지만 그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불분명한 의미로 아무데나 쓰이는 것은 분명 지양해야 할 일이다. 낯선 말들이 어떠한 언어적 근본도 없이 마구 쏟아지는 지금의 잡지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


무드 (영 mood)

 분위기. 옷과 신발 등 전체적인 착장에서 풍기는 느낌.
 레이스 소재의 옷을 코디하면 로맨틱한 무드를 연출할 수 있다.
→ 어떠한 특성을 조목조목 분석하기 힘들 때 에둘러 쓰는 표현으로 대개 ‘로맨틱한 무드’, ‘페미닌한 무드’처럼 영어 형용사를 한국어처럼 활용한 단어들과 함께 쓴다.


드레스 업 (영 dress up)

 한껏 차려입다.
 웨어러블한 (영 wearable-)
→ 신경 써서 입은 것이 티가 나는 옷에 주로 쓰는 표현인데 사실 잡지에 실리는 거의 모든 옷들이 ‘드레스 업’한 옷들에 가깝다. 본래의 영어 뜻과는 살짝 멀어져 일상생활에서 자주 입기는 쉽지 않지만 약간 부담스럽다 싶을 정도로 차려 입었을 때 쓴다.


셀프 다잉 (영 self DIYing)

 직접 만든. 스스로를 뜻하는 셀프(self)와DIY(Do It Yourself)의 합성어.
 셀프 다잉 악세서리
→ DIY 자체를 동사처럼 취급해 ing를 붙인 ‘다잉’은 보그체 중에서도 가장 근본 없는 단어라 할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은 아니지만 한번 맞닥뜨리면 뭘 뜻하는지 한참 고민하게 된다. 치료가 시급한 단어.


잇 (영 it)

 바로 그. 대개 강조를 할 때 쓰인다.
 핫 (영 hot)
→ 매력적이고 인기 있는 가방이나 신발을 가리킬 때 ‘잇 백’, ‘잇 슈즈’처럼 쓴다. 잡지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로 멋있고 예쁘면서 세련된 등등의 수식어를 ‘잇’으로 요약해 쓸 수 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말에는 ‘핫’이 있다. 


쿠튀르적인 (프 couture--)

 프랑스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쿠튀르적인 장식이 달린 블라우스
→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프랑스 디자이너의 작품이고 어디선가 우아한 느낌이 날 때 ‘쿠튀르적인’ 감성이 느껴진다고 한다. 단어의 기원인 ‘오트 쿠튀르’ 자체도 디자이너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불분명하고 무책임한 단어라 할 수 있다. 


패피 (영 fape)

 패션(fashion)과 사람(people)의 합성어로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패피들에게 인기를 얻은 가방
→ ‘셀프 다잉’에 이어 근본 없기로는 뒤지지 않지만 너무 대중적으로 쓰여 그 문제점을 잘 느끼지 못하는 단어다. 기존에 쓰였던 패션 피플이라는 말로는 지면이 좁았는지 그 마저도 ‘패피’라는 말로 줄여 쓰고 있다.


힙한 (영 hip-)

 개성 있게 멋을 낸. 유행을 앞서가는.
 (때때로) 난해한. 낯선.
 이질적인 소재로 옷을 맞춰 입으면 힙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힙스터(영 hipster)
→ 유행을 좇지 않고 본인의 개성을 유지해 멋을 내는 사람들을 힙스터라 칭한다. 여기서 ‘힙’이라는 말만 따와 활용한 것이 ‘힙하다’이다. 이 역시 ‘쿠튀르적인’ 단어와 마찬가지로 조금 난해하거나 대중적이지 않은 것들을 칭할 때 쓴다. 영어 사전에 ‘hip’을 검색하면 엉덩이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역시 근본 없이 만들어진 말임을 알 수 있다. 정말이지 ‘힙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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