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과제를 하기 위해 찾은 자료들이 모두 영어로 쓰여 있다면 어땠을까? 당황스러움에 과제를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한글과 한국어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그 고마움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초등학교 받아쓰기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히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은 어디 갔는지 맞춤법을 틀리는 우리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로 한글날은 568돌을 맞이했다. 누군가에게는 한글날이 단순히 ‘쉬는 날’이겠지만 본래 한글날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리고 우리의 언어생활을 되돌아보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SNS에 ‘오늘 하루라도 맞춤법을 지키자’, ‘영어를 쓰지말자’는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한글날에 우리가 정말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이다.

이번 한글날 기획은 비록 평소에 한글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독자라 하더라도 기사를 읽는 잠시 동안은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요즘 젊은 것’들이 쓰는 신조어는 정말 나쁘기만 한 건지, 한글날에는 정말 한국어만 써야 하는 건지 의문이 있었다면 이 기사가 더욱 반가울 것이다. -편집자주-


 
‘오늘 드립 꿀잼’, ‘우리 썸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장들이 별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드립’, ‘썸’ 등과 같은 신조어들은 더 이상 특정 사람들만 알고 쓰는 은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임은 물론 음악, 드라마, 예능 등의 대중매체에서도 활발히 이용될 만큼 여러 신조어들은 우리의 언어생활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신조어로 뒤덮인 언어생활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매년 ‘한글날’이 되면 앞다퉈 쏟아지는 ‘신조어가 언어 파괴로 이어진다’는 골자의 기사가 그렇다. 과연 정말 그럴까? 신조어로 물든 우리의 언어생활과 이에 대한 우려를 되짚어 보자.    


일상 속으로 들어온 신조어

최근 등장한 몇몇 신조어는 단순히 젊은 세대만이 쓰는 은어를 넘어서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현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 “요즘 따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올해 많은 인기를 얻었던 노래 <썸>의 가사 일부분이다. ‘내 거인 듯 내 거 같지 않은’ 남녀 사이의 알 듯 말 듯한 복잡한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 ‘썸’을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신조어 ‘드립’ 역시 마찬가지이다. 드립이란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고 있는 화자들은 농담과 드립에는 의미상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 것이다. 농담이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을 뜻한다면 드립은 그보다 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블랙코미디, 해학이 담긴 말, 자조적인 비난이 섞인 말, 심지어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채 무심코 뱉은 말실수까지도 모두 드립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오타쿠’는 원래 ‘특정 장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졌지만 우리나라에서 ‘오타쿠→오덕후→덕’의 과정으로 형태가 변형되며 의미가 달라졌다. 오타쿠가 가졌던 부정적 어감과 달리 ‘덕’은 ‘특정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란 의미로 바뀐 것이다. ‘음악덕’, ‘성우덕’ 등 다양한 명사 뒤에 붙어 새로운 합성어로도 활용된다.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기존의 단어들이 본래 가진 의미보다 확대돼 활용되기도 한다. 명사인 ‘꿀’ 역시 꿀이 가지고 있는 달다는 특성이 일상 언어생활에서 확대돼 긍정적인 의미를 강조할 때 쓰이게 됐다. 그래서 ‘재미있다’를 줄인 ‘잼’과 합성된 ‘꿀잼’은 ‘정말 재미있다’란 의미를 갖게 된다.


외계어에서 표준어가 되기까지

‘신조어로 인해 우리 실생활에서 언어 파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한글날에는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신조어 사용의 심각성을 제기하는 기사다.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버카충(버스 카드 충전)’ 등의 신조어는 긴 어구에서 각 어절의 첫 소리를 조합해 만들어진 단어다. 분명 이런 신조어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기존 언어를 파괴하는 ‘외계어’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줄임말의 형태로 만들어진 신조어 중 지금까지 대중적으로 쓰이며 표준어로 등재되기까지 한 단어가 있다. 바로 ‘왕따’다. 왕따란 단어의 발생 원리도 차도남, 버카충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95년경에 ‘매우, 진짜, 엄청’의 의미로 왕이 접두사처럼 활용됐다. 여기서 ‘따돌림을 당한다’라는 말이 합성, 축약되며 왕따란 단어가 만들어졌다. 왕따 문제가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대두된 이후 왕따란 단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쓰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왕따는 표준국어대사전 2008년 개정판에 이름을 올렸다.

문화사회연구소 권경우 소장은 “사회현상이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한 만화에서 유래돼 인기를 얻은 차도남, 교통카드 이용이 활성화되며 만들어진 버카충도 왕따와 같이 사회 현상에 영향을 받은 언어다. 왕따에 비해 단어가 내포한 사회적 파급력이 적을 뿐 결코 언어를 파괴하는 주범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차도남 역시 한동안 ‘따시남(따뜻한 시골 남자)’,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식으로 변형되는 등 여러 활용이 있었지만 오늘날 일상 대화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버카충 역시 일부 청소년만이 이용할 뿐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다.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가 협소해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못하거나,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경우다. 드립, 썸 등의 신조어도 처음 대중들에게 알려졌을 때는 마치 외계어 같았지만 단어의 뜻과 표현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며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만약 더 많은 사회적 지지와 공감을 얻는다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썸을 찾아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신조어가 ‘사고의 창’을 넓힐 수도 있을까?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된다. 신조어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줄 안경이 될 수 있다. 만약 썸이란 단어가 생기지 않았다면 남녀 사이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썸을 통해 설명하기 어려운 이러한 관계를 쉽게 설명할 수 있듯 신조어는 언어생활을 풍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진 애치슨 교수는 “신조어는 표현 양식을 풍부하게 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언어는 어차피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조어가 항상 언어를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어의 다양성을 퇴보시킬지도 모른다. 권 소장은 신조어의 유행성을 들어 신조어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사용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언어생활이 특정 단어로만 쏠리게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어떤 상황, 감정을 표현할 다양한 단어 대신 특정 신조어 하나의 사용빈도만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흥미롭다’, ‘우스꽝스럽다’, ‘감동적이다’, ‘통쾌하다’ 등의 표현들 대신 ‘꿀잼’이란 표현 하나만 사용되는 것이다. 권 소장은 “다양한 우리의 언어가 인터넷 신조어로 인해 단순해질 수 있다”며 “언어는 사고의 창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폭이 줄어드는 것은 곧 우리의 사고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나친 신조어 사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롭고 재미있으며 효율적으로 우리의 감정과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신조어는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그러나 신조어의 과도한 사용으로 우리의 감정이 표현이 단순화돼 언어생활의 족쇄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대학에서 <대중문화와 철학>을 가르치는 이순웅 교수는 “창의적인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기존 언어의 사용을 침체시키고 사장시키는 신조어 사용은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신조어를 사용하려 한다면 해당 어휘가 내 감정, 내 의도에 꼭 맞는 단어일지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