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아름답게 색칠할 줄 알아야 한다. 군주는 모든 좋은 자질을 갖출 필요는 없으나 최소한 백성들에게 그런 자질을 갖춘 듯이 보여야 한다.” 그 유명한 군주론의 일부이다. 500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대통령을 보는 시각은 이와 얼마나 다른가?

대통령의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발언이 세간에 자주 오르내린다. “못 해먹겠다는 말은 가까운 친구한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행동은 크게, 말은 무겁게 하는 게 좋다.” 이런 충고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바를 보면 우리가 군주제 속에 살고 있는지, 민주공화제 속에서 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언론은 계속해서 얼굴을 바꾼다. 어떤 때는 도덕성을 탓하다가 어떤 때는 현실을 끌어들여 마키아벨리적 군주론을 내세운다. 대통령에게 권위를 갖추라고 끝없이 조언한다. 그렇지 않은 척 혹은 마치 그런 듯이 행동하라고 끝없이 주문한다. 현실은 늘 총체적 위기 상황이기에, 대통령에게 타협보다 결단을 내리라고 강조한다. 지도자는 그러해야 한단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라는 말을 되새기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대통령관의 핵심은 바로 탈권위주의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 왔다. 대통령의 말이면 무엇이든 크게 보도된다. 솔직하고 친근한 인간과, 지도자가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관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맞는 말이며 모두가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국정 총책임자, 리더쉽, 카리스마 등등의 변수들이 붙기 시작하면 함수는 점점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진다.

전직 대통령들은 대부분 마키아벨리스트이거나 마키아벨리스트에 가까웠다. 마키아벨리즘으로 사회를 바라보면 객체화된, 대상화된 주권자들과 전제 군주적 대통령 밖에 없다. 마키아벨리스트의 정치 철학은 군림의 철학, 통치의 철학이다. 그러한 정치 환경에서 생활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탈권위주의, 인간적 대통령을 표방하니 우리는 불편하다. 우리는 권위주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평등한 관계 속에서의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보다 수직적으로 지시하고 보고하는 것이 더 편하게 받아들여 진다. 우리 안에도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스며든 것이다.

민주적으로 무엇하자는 주장은 거의 백퍼센트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총 지휘관이 우리에게 말한다. 민주적으로 하자고. 한 사람의 통치력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젖어 있다. 우리는 일말의 피로감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이를테면 국민은 소극적 마키아벨리스트인데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적극적 반마키아벨리스트이다.

마키아벨리만큼 많은 비판을 받은 학자도 없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즘에 대해서 누구나 신나게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의 마키아벨리즘을 정치 논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데 아무런 비판의식도 가지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위대한 지위에서 이 낮은 곳을 내려다 보시면 당신은 깨달으실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크고도 매서운 운명의 저주를 부당하게 받고 있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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