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A씨는 개강 전 시간표를 짜기 위해 학교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대학에 입학해 다양한 교양과목을 골라 자유롭게 시간표를 짤 생각에 들떴다. 그러나 A씨는 듣고 싶은 수업들을 선택할 수 없었다. A씨는 공학교육인증제(이하 공학인증제)를 실시하는 학과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실무형 인재 양성 위한 공학인증제

공학인증제는 한국공학교육인증원에서 제시한 지침과 기준에 따라 공학 교육을 실시하는 제도다. 기업에서 필요한 설계 및 실습 교육을 강화시키고 현장감 있는 교육을 실시해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공학인증제를 도입한 학과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별도의 절차 없이 프로그램에 제시된 커리큘럼을 따라야 한다. 공학인증은 대학의 커리큘럼이 산업체의 요구를 반영한 기준에 부합한지 심사를 받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공학인증제는 대학 교육과정의 품질을 보증해 사회 진출 시 가산점을 받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기업체 모두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또한 해외 대학이라 하더라도 공학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면 국내에서 수강한 과목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국제적 엔지니어로서의 자격을 함께 획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학인증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학인증제 도입 15년이 지난 현재 국내 대부분의 공과 대학에서 560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공학인증제가 보편화됨에 따라 공학인증제를 운영하지 않는 대학은 실력이 떨어지는 대학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는 공학인증제를 이수하는 학생비율이 낮아지는 것을 우려해 공학인증프로그램을 강요해 학생들의 자발적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 공학인증제도가 대학을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가 됨에 따라 이를 획득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기준에 학생 부담 커져

일부 학생들은 공학인증제에서 요구하는 이수조건이 일반 졸업 기준보다 지나치게 까다롭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졸업을 위해 공학인증 기준과 일반졸업 기준을 모두 이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대학의 경우 공학인증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교양 18학점, MSC(수학, 기초과학, 전산학) 30학점, 설계교과목을 포함한 전공과목 60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또한 학과별로 지정한 선·후수 교과목 이수체계를 준수해야 한다는 지침도 포함돼 있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이수해야하는 공학 계열 학생들의 시간표는 일반 졸업기준을 요구하는 학과에 비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임주미(연세대 10) 씨는 “공학인증 프로그램을 수료하려면 16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듣고 싶었던 교양과목은 들을 수 없다. 전공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기 위해 들어야 하는 수업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학도들도 다양한 학문을 접하면서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커리큘럼이 엄격하게 짜여 있기 때문에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을 듣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B(21)씨는 “커리큘럼을 따르려면 선·후수 과목을 순서대로 이수해야 하는데 그 과목이 개설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정해진 때에 과목을 듣지 못해 졸업이 늦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공학인증제 수료를 포기하려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연세대와 경북대 같은 대학의 일부 학과에서는 공학인증제 수료를 졸업조건으로 규정해 복수전공이나 취업 외의 다른 진로를 생각하는 학생들까지 의무적으로 공학인증에 참여시키고 있다. B씨는 “공학인증프로그램을 포기하려면 지도교수의 승인을 받아야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학인증제가 학생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학교를 위한 제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효성 없는 ‘입사 지원시 가산점’

공학인증제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거론되는 ‘입사 시 가산점’도 그 혜택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은 공학교육인증프로그램을 수료한 졸업생의 경우 삼성, Anlab, SK 등 수십 개의 기업에서 입사 시에 가산점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 NHN 정도에 불과하고 공학인증제를 도입한 대학이 많아지면서 차별성도 사라지고 있다. C(26)씨는 “서류전형 우대라는 내용만으로는 어떤 혜택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일부 기업의 인사팀에서는 공학인증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의견수렴 필요해

공학인증원에서는 ‘순환적 자율개선형 공학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학습 성취평가 및 평가 자문결과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교과과정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을 밝혔었다. 이에 따라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이 매년 새로운 지침과 심사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환경공학부 김현욱 교수는 “공학인증제는 분명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단점도 있지만 이에 대한 학생들의 피드백은 많지 않다. 학생들이 공학인증프로그램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프로그램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대학 공학혁신센터 김혁진 팀장은 “공학인증뿐 아니라 공학교육 전반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매우 필요한 사항이다. 기존에 실시해오던 의견 수렴 외에도 다양한 의견 교류를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_ 박미진 기자 mijin349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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