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 성인들을 위한 만화
장한빛 기자(이하 장): 혹시 며칠 전 25일 레진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로부터 ‘접속차단’ 조치를 받은 것을 알고 있나. 레진의 콘텐츠에 음란성 게시물이 포함됐다는 것을 이유로 레진 홈페이지가 ‘불법·유해사이트’가 돼버렸다. 곧 온라인상에서는 이용자들의 항의글이 폭주했다. 결과적으로 바로 다음 날 차단조치가 해제됐지만 이용자들은 물론이고 레진을 몰랐던 사람들에게까지 회자됐다. 레진은 이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김태현 기자(이하 김): 레진도 대단한 게 이걸 기회로 삼아 ‘창사 최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더라(절레절레). 레진은 초기 ‘성인들을 위한 웹툰’이란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때문에 ‘성인만화’는 레진의 정체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게재되는 작품의 상당수가 다소 선정적인 성인만화다. 방통위가 차단조치를 취한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인 것 같다.
장: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영리하다. 인터넷 상에서 결제를 하고 돈을 쓸 수 있는 건 주로 성인들이지 않나. 기존에 ‘공짜’로 여겨지던 웹툰을 유료로 이용하게 만들기 위해선 결국 성인들을 공략하는 게 필수다. 그 때문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한 성인만화는 네이버, 다음카카오에서 보기 어려운 콘텐츠다. 레진이 블루오션을 공략해 독자적인 콘텐츠를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레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 1, 2, 3위 모두 성인만화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소비자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서비스
김: 레진의 진정한 저력은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한 유료화 정책을 펼쳤다는 데 있다. 레진은 전체유료화, 부분유료화, 무료의 세 가지 방식으로 만화를 제공하고 있다. 이 중 부분유료화 정책은 레진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무척 특이하다. 부분유료 만화는 결제를 통해 무료이용자보다 일주일~한 달 가량 먼저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무료이용자가 어떤 만화의 최신화를 보기 위해서는 30일을 기다려야 한다. 30일을 기다리기 싫으면 유료 결제를 하면 된다. 자연스레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지능적이다. (웃음)
장: 만화를 유료로 구매하면 해당 화가 ‘내 서재’라는 곳에 보관된다. 그것도 상당한 고화질로.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면 자신이 구매한 만화를 고화질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식욕, 수면욕 보다 소장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들에겐 매력적일 것이다.
김: 레진에서 만화를 많이 보고, 구매하면 해당 패턴을 분석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만화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만화를 많이 보면 볼수록 더 정확하게 독자의 취향을 저격한다. 이런 시스템을 보면, 지금까지 이 정도로 소비자들을 잘 파악하는 기업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다.
장: 바로 그런 레진의 지능적인 마케팅이 웹툰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지금까지 웹툰은 ‘무료로 보는 콘텐츠’라는 의식이 강했다. 이 때문에 만화의 저작권이 종종 무시되고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게 하는 레진의 마케팅이 이런 인식을 개선시켜 나가지 않을까.
더 좋은 만화를 위한 시스템
김: 레진은 만화를 연재하고 있지 않더라도 계약 작가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고정고료를 지급한다고 한다. 만화만 그려도 생활이 유지되게 배려하는 것이다. 레진이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고정고료는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이라 한다.
장: 고정고료는 작가들이 더 좋은 만화를 그리는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음악가들에게도 음원 판매 수입 외에 꾸준히 저작권료가 발생하는데 만화는 원고료 외 부수적인 수입이 상당히 적은 편이지 않나. 단행본 발매나 영화·드라마로 재창작 될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작권료 같은 부수적 수입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김: 맞다. 그래서인지 요즘 웹툰을 보면 작가가 지나치게 영화나 드라마로의 각색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웹툰에서 통키의 ‘불꽃슛’ 같은 만화적인 설정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나(웃음). 레진이 지급하는 높은 고정고료가 작가들에게 다른 고민 없이 자신이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릴 수 있게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 역시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리_ 김태현 기자 taehyeon119@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