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2016년 학사구조조정 개편안을 반대한다는 안건은 정족수 2346명, 찬성 2213명, 반대 2명, 기권 131명으로 의결됐습니다.” 지난 2일 건국대학교 학생총회에서 의사봉 소리가 울려퍼지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자신들의 과를 지키기 위해, 학교를 지키기 위해 모여든 학생은 학생총회가 개회되기 위한 최소 정족수인 1700명을 훌쩍 넘었다. 이날 학생총회에는 고려대, 국민대, 세종대, 연세대, 한양대, 홍익대 학생대표도 함께 참석해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최근 대학가에 유행처럼 불고 있는 ‘대학구조조정’에 학생들의 의견도 반영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일방적 정원 조정에 전공 잃은 학생들

건국대는 지난달 17일 ‘2016학년도 학사구조개편결과 및 학과 평가제 시행안’을 발표했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학부제를 학과제로 개편하고 정원을 조정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 과정에서 영상학과와 영화학과, 공예학과와 텍스타일디자인학과를 통합하고 경영정보학전공과 소비자정보학전공을 폐지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건국대는 학문의 유사성을 들어 학과를 통폐합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지금까지 건국대는 영화학과와 영상학과 간의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전과도 허용하지 않았었다.

최근에서야 논의가 활발해지긴 했지만 대학의 구조조정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앙대 역시 학과제를 폐지하고 학부제로 개편하려는 과정에서 학생들과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모든 전공을 학과제로 전환하는 건국대의 행보와는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두 대학 모두 ‘유연한 정원 조정’을 염두에 두고 한 선택이다. 학부처럼 단위가 크거나 두 개 학과를 합쳐 조금 더 큰 규모의 학과를 만들 경우 입학 정원을 줄이기에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평가에 앞서 “대학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대학들은 교육부의 눈치를 보며 자체적으로 정원을 줄여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한성대 역시 한국어문학부와 지식정보학부, 경제학과와 부동산학과, 멀티미디어공학과와 컴퓨터공학과 등을 통합하겠다는 안을 내놓으며 대학의 구조조정 흐름에 가세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르지만 최근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대학들은 모두 4월 입학전형 확정을 앞두고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취업률·인기도 평가…설 곳 잃은 학과들

대학구조개혁평가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현실이다(제673호 7면 「‘교육’ 이념 없는 ‘교육부’식 줄 세우기」 참조). 하지만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최근 대학들이 내세우고 있는 구조조정의 기준은 의문투성이다. 건국대는 이번 시행안에서 ‘학과 평가제’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학과 평가제가 실시될 경우 각 학과는 2년 마다 평가를 받게 되며 결과에 따라 정원의 증감이 결정된다. 이에 따라 학과유지를 위한 최소인원인 30명을 넘지 못하는 학과는 통폐합 대상이 된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문화콘텐츠학과, 지리학과, 화학과 등 현재 정원이 30~40명 남짓인 학과들에겐 지극히 불리한 평가 방식이다.

한편 중앙대는 지난 2월 26일 학생들의 인기도와 그에 따른 신입생 충원율에 따라 전공의 존폐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기업식’ 구조조정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대의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에 따르면 학과제가 폐지되고 단과대 단위로 입시 제도가 개편됨에 따라 학과별 정원에 대한 규정이 사라지게 된다. 계획안이 확정될 경우 2016학년도 신입생들은 입학 후 전공을 선택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선택받지 못한’ 이른바 비인기 학과 및 전공들은 퇴출된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학사제도를 유연하게 개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의 여론 마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중앙대 교수대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계획안에 대해 “시장논리와 기업 담론으로 무장한 기업이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과 돈 안 되는 기초학문·예술 분야를 자연 도태시키는 방법으로 고안해낸 것”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담은 성명을 냈다.


통보식 구조조정 막기 위해선 소통과 연대가 중요

대학 구조조정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27일 교육부가 200억 규모의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프라임 사업은 대학의 자율적인 학과 개편 및 정원 조정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으며 산업수요에 맞춰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한다. 프라임 사업 계획이 확정되면 대학들은 또 다시 취업률 중심으로 학과를 개편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건국대 영화학과 김승주 비상대책위원장은 “영화학과처럼 통폐합되거나 폐지되는 전공이 있는 반면 오히려 정원이 늘어나는 학과들도 있다. 학교 측에서 취업률 등을 기준으로 재정지원사업에 유리한 학과들만 밀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학생들의 여론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지금은 일부 학과만의 문제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학과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연대를 형성하고 꾸준히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글_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사진_ 윤진호 수습기자 jhyoon2007@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