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에서 신발 한 켤레를 구입하면 다른 한 켤레가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에 기부된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걸어야만하는 아이들을 위해 고안된 기부 방식을 통해 탐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착한 기업의 얼굴을 한 탐스가 오히려 개도국에 폐를 끼쳐 문제가 되고 있다. 기부된 신발들로 인해 개도국의 신발산업이 경쟁력을 잃어 산업기반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난하고, 열약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부와 원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외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적정기술’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 아무도 찾지 않는 플레이 펌프

중간 규모의 기술인 적정기술

적정기술은 경제학자 슈마허의 ‘중간기술’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개도국 발전을 위해 대규모 기술 원조를 시작했다. 개도국에 거대한 공장들을 세우고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황폐화되고 기계의 동력이 부족해 사용이 중단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공장들은 개도국에 어울리지 않았고 오히려 개도국의 성장을 저해했다.

슈마허는 이를 비판했다. 그는 중간 규모의 기술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중간기술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중간기술은 원시기술보다 뛰어나지만 선진국에서 행해지는 최첨단, 자본집약적인 거대 기술보다는 작은 규모의 기술을 의미한다. 이는 현지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현지 자원을 이용해 현지인도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생태계의 위협을 줄여 친환경적이다. 또한 제조과정이 어렵지 않고, 자본의 투입이 적어 현지인이 직접 생산에 참여할 수 있다. 슈마허는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은 결국 중간 기술이라 주장했다. 이후 중간기술은 적정한 기술을 의미하는 적정기술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적정기술이 지향하는 의미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많은 적정기술 제품들이 버려지고 있다. 도시사회학과 심재만 교수는 “적정기술 제품을 개발할 때 누구에게 적정한 기술인지, 어떻게 해야 적정한 기술인지와 같은 적정기술의 기본적인 철학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적정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활용되어야 될까? 이에 대한 해답은 ‘디자인’과 ‘시장’에 있다.


디자인 중심의 적정기술, 현지인 이해하기

‘플레이 펌프’는 적정기술이 지향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플레이 펌프는 회전놀이기구를 이용해서 깊은 우물의 물을 끌어올리는 적정기술 제품이다.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가지고 놀 때 기구가 회전하는데, 이를 동력으로 우물의 물을 물탱크로 끌어온다. 플레이 펌프는 획기적인 기술로 주목받아 많은 개도국에 설치됐다. 하지만 말라위의 한 시골에서는 아무도 플레이 펌프를 찾지 않는다. 놀이기구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별로 없을뿐더러 여자나 노인이 돌리기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초등학교가 위치하지 않은 지역에서 플레이 펌프는 적합하지 않은 기술인 셈이다.

적정기술 제품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의 효율성이나 첨단성보다 각 공급지역의 수요자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적정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디자인은 단순히 스타일링을 의미하기보다 물건을 사용할 사람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제품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열약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소외된 사람을 배려하는 디자인은 ‘Q 드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시골지역에서는 물을 얻기 위해 여성들이 무거운 물통을 지고 수 킬로미터를 걸어야만 했다. Q 드럼은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개발됐다. 도넛 모형의 물통에 끈을 연결해 이동을 편리하게 했다. 끈을 당기면 물통이 구르기 때문에 여성들은 이제 힘을 들이지 않고도 먼 거리에서 깨끗한 물을 떠올 수 있다.

Q 드럼은 뛰어난 첨단 기술이 아니며, 생산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수요자들의 문제와 필요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에 고된 노동을 덜어줄 수 있었다. 이는 디자인에 주목한 적정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 옮기기 편리한 물통인 Q 드럼

시장 중심의 적정기술, 현지인과 함께하기

적정기술의 대가인 폴 폴락은 2010년에 돌연 “적정기술은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의 사회·경제적인 요인과 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보급된 적정기술 제품들이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고 봤다. 

시장의 중요성을 간과한 적정기술 제품으로는 ‘말라리아 모기장’을 들 수 있다. 말라리아의 피해가 심각한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살충처리가 가능한 모기장이 개발됐다. 이 모기장은 많은 지역에 유통되고 있는데 얼마전 많은 단체들이 무상으로 배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수한 선의는 예기치 않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모기장이 무상으로 배급된 탓에 모기장을 판매하던 주변의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결국 모기장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사라지면서 지역 주민들은 모기장을 구하기 위해 수입과 원조에 의존해야만 했다. 적정기술 제품의 유통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배급된 모기장으로 인해 뜻밖의 재앙이 발생한 셈이다.

이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적정기술의 수요자를 단순히 원조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현지의 시장을 고려해 제품을 수요하는 소비자로 여겨야하며 나아가 이들이 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지 시장에서의 수요를 파악하고 적절한 유통 방법과 마케팅 전략을 모색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정기술 제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엔지니어, 디자이너뿐 아니라 비즈니스 전문가도 함께 해야 한다. 또한 적정기술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 유통하는 과정에서 현지인의 참여가 필요하다. 인적 자원을 숙련시키고 소득을 창출해 지역사회의 자립성을 높일 때 진정한 적정기술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적정기술

2011년 3월에 일본 후쿠시마에는 봄을 맞이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진과 쓰나미로 원전사고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병을 얻었다. 또한 유출된 방사능이 공기, 땅뿐만 아니라 바다까지도 오염시켜 세계의 많은 국가에 위협을 가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전사고로 인한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우라늄 핵 폭발을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방사능 폐기물 처리 문제와 방사능 유출의 위험이 도사린다. 원자력 발전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원자력 발전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들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거둘 수 없다면 사람을 우선으로하는 적정기술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심 교수는 “원자력 발전은 효율적인 기술임이 분명하지만 인간과 환경에 피해를 가하기 때문에 적정한 기술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적정기술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류송희 수습기자 dtp02143@uos.ac.kr
참고_ 김정태 외, 「인간 중심의 기술 적정기술과 만남」, 에이지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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