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일반 노동조합의 설립

지난 2월 6일, 무노조 경영으로 유명한 삼성그룹을 상대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최근 신라호텔노조설립이 유령노조 사전 설립이라는 사측의 방해로 실패로 끝난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라 이번 ‘삼성일반노동조합’(위원장 김성환)의 설립은 더욱더 주목할 만 하다. 김성환 위원장은 삼성 계열사였던 이천전기에서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다 해고된 뒤 복직투쟁을 전개해왔으며, 2000년 설립된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번 삼성일반노동조합은 해고자가 만든 노동조합인 셈이 되어 어떻게 보면 이상한 노조다. 현재 삼성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은 인물이 삼성일반노조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인들이 기업별 노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개별기업단위를 넘는 일반노조라 할지라도 해당관청에게서 신고필증을 부여받은 합법적인 노조이다. 현행 노동법과 판례에 의하면 해고자라 하더라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노조가 설립되었다고 해서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이 무너졌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일반노조가 삼성그룹을 상대로 노동조합활동을 하려면 삼성그룹 임직원이 가입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삼성일반노조는 현재 전국 각지에 분포한 삼성 계열사들과 사내하청업체,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노동조합 가입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만약 삼성 관련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삼성을 상대로 단결권-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기업 외부에서 노동조합을 조직, 관련 근로자들을 포섭해 진정한 노동조합으로 거듭나는 형식인 것이다.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은 신화라고 불려 지기도 한다. 현대, 대우, 엘지 등 다른 경쟁 그룹들이 해마다 노동조합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 삼성그룹은 운동장에 모여 이른바 ‘삼성가족 화합대회’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 신화 속엔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을 박탈당한 인간들의 고통이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물론 삼성 계열사에도 노조는 있다. 삼성중공업이나 삼성에스원, 호텔 신라 등 몇몇 계열사에 노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조들은 대부분이 노동조합 신고를 막기 위해 미리 설립된 유령노조라고 한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신라 호텔 노조가 대표적 사건이다. 사측은 노조설립움직임을 저지키 위해 진짜 노조설립신고서가 제출되기 40분전 다른 직원 명의로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기업 내에 복수노조 설립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미리 노조설립신고서를 행정관청에 제출하면, 뒤에 제출하는 이들은 노조로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삼성은 또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는 직원들에 대하여 이른바 노무팀이라는 전담반을 구성하여 24시간 감시하고 심지어는 납치와 협박, 회유를 서슴치 않고 자행해 왔다고 한다.
삼성일반노조는 이러한 현실의 벽을 넘어보고자 하는 고민 속에서 탄생했다. 김성환 위원장을 비롯한 삼성그룹해고자출신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호 받을 수 있는 법의 테두리 속에서 활동하기 위해 민주노총 관계자나 노동 전문 변호사들을 찾아다녔고 그 해답이 바로 외부에서 조직한 노동조합이었다고 한다. 일반노조는 그룹 외부에 존재하는 만큼, 조합원들을 사측의 탄압으로부터 보호하고 조직화활동을 하기가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일반노조는 그 활동을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다만 삼성 관련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만을 밝히고 있다.
삼성일반노조는 기업 외부에서 조직되었기 때문에 조합비 없이 몇몇 조합원의 후원금에 의해 유지되며 노조 사무실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번듯한 사무실에서 유령노조가 사주를 위하여 하지 않는 일을 노동자를 위하여 해낼 것으로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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