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스피킹 인 텅스>

▲ 연극 포스터
연극의 포스터에는 <Speaking in tongues>라는 원제만이 쓰여 있다. 궁금증에 사전을 찾아보니 ‘스피킹 인 텅스’는 ‘종교적인 황홀함에 이르렀을 때 내뱉는 알 수 없는 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포스터에는 작은 글씨지만 이 연극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읽어버린 자들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함께 적혀 있다. 이 연극은 바로 ‘알 수 없는 말’이라는 뜻에서 출발해 신뢰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고백’에 이른다. ‘감성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걸맞게 연극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불신의 원인을 좇지만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건 답이 아닌 무수한 질문들 뿐이다.

허름한 모텔방, 네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 만난 상대와 저지르는 불륜, 그만큼 어색하고 불편하다. 네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를 배신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각기 다른 길을 걸을 때 이들의 비극은 시작된다. 누군가는 배신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그저 배신을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상처받은 자는 떠나고 남겨진 자는 또 다른 상처를 입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규정할 수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잔인한 이 네 인물의 관계는 끊임없이 삐걱댄다. 같은 무대에서 일어나지만 서로 다른 두 공간의 이야기가 어긋나는 네 사람의 대사로 얽혀진다. 

▲ 네 인물이 불륜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지는 연극의 첫 장면
연극은 완벽하게 짜맞춰지는 조각퍼즐과도 같다. 그저 허투루 스쳐 지나가는 대사가 하나 없다. 모든 설정은 철저한 계산의 결과물이다. 4명의 배우가 1인 2역, 혹은 1인 3역을 맡아 총 9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 역시 그렇다. 각 배우가 연기하는 둘 이상의 인물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일례로 ‘닐’을 연기하는 배우는 닐의 첫사랑 ‘사라’가 지금 만나고 있는 유부남 ‘존’, 또 ‘제인’의 남편인 ‘피트’도 함께 연기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사라를 연기하는 배우는 제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두 배우는 부부, 불륜의 관계, 그리고 첫사랑의 추억을 가진 사이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이 역설적인 관계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신뢰를 잃어버린 자들의 고백이다. 누구를 향한 건지 알 수 없는 말의 화살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내뱉는 증오의 말처럼 돌아오곤 한다. 누군가에게 내뱉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은 그저 공중에서 흩어지고 만다. 혹은 때때로 나 자신을 상처입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이 주인공들은 신뢰도, 사랑도, 또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마저도 잃어버린 자들이다.

연극은 그들을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비극을 마주하면서 정작 위로받는 건 누군가에게 배신당한, 혹은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해야 할지 조차 모른채 그저 내뱉는 그들의 고백이 유난히 아리게 다가오는 이유다.

 

글_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사진_ 수현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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