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상한 시절입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의 여파로 이완구 전 총리는 취임 70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홍준표 경남도지사 역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故 성완종 전 경남회장이 자살하기 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밝힌 내용과 이후 발견된 쪽지에서 이들에게 정치자금이 건네졌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인 이 전 총리는 이임식에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으며 오늘은 여백을 남기고 떠나고자 합니다”라며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홍 지사 역시 본인의 SNS 등을 통해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했지만 국민들은 故 성 전 회장이 정치자금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생을 마감한 만큼 철저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 합니다.

지난 20일 특별수사팀은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를 불구속기소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불구속기소란 말 그대로 구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보통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없는 피의자에게 내려집니다. 검찰은 정말 두 사람에게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검찰은 한동안 홍 지사의 측근 일부가 증인을 찾아가 홍 지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회유한 것에 대해 조사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유를 홍 지사가 직접 지시한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정황이 없고, 그가 공직을 맡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기소하는 방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불구속기소의 역사를 살펴보니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자금이나 뇌물 수수같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 구속기소된 정치인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습니다. 검찰은 이번 불구속기소 결정에 대해 “통상 정치자금법 위반은 2억원 이상인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자금처럼 민감한 사안에서는 증언 하나하나가 재판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할 경우 홍 지사의 사례처럼 회유 등으로 인한 증거 훼손을 막을 수가 없어집니다.

이 전 총리와 홍 지사가 위반한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마련된 법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검찰은 이번 불구속기소 처분으로 인해  ‘성완종 리스트’ 수사 초반부터 제기된 ‘봐주기식 수사’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듯 합니다. 증거인멸의 가능성 조차 통제하지 못한 채 이뤄지는 ‘특별 수사’가 어떤 특별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장한빛 기자 hanbitive@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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