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범죄 발생 건수가 1991년 114만 7752건에서 2011년 175만 2598건으로 약 60만 건 증가했다. 흉흉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요즘, 늦은 밤 인적 없는 골목을 지나다니며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부산의 ‘마! 라이트’ 캠페인은 시민들의 이러한 두려움을 경감시키기 위해 등장했다. 인적이 드문 골목골목, 마! 라이트가 설치된 가로등 밑에는 포돌이가 ‘마!’ 라고 고함을 치는 모습이 나타난다. 범죄예방 환경설계기법, 즉 셉티드를 도입한 디자인이다.

▲ 우리대학 중앙도서관 뒤 셉티드 기법을 가상 도입한 모습

‘거리의 눈’, 범죄 막는 셉티드 기법

셉티드(CPTED)는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약자다. 범죄경제학에 따르면 범죄자들은 범죄행위에 필요한 비용과 이익을 고려한다. 범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발각될 확률이 낮을 경우, 범죄로 인한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고 판단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셉티드는 범죄자들의 이러한 경향을 고려해 범죄를 함부로 저지를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여 범죄 발생기회를 사전에 제거한다. 거주자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거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설계기법이다.

셉티드는 도시화의 문제로 인해 등장했다.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이 붙어있던 전통적 도시 공간이 도시화 속에서 엄격하게 분리됐다. 낮에는 주거공간이, 밤에는 업무공간이 비는 현상이 발생했고 이러한 빈 공간에 침입해 이러한 범죄를 일삼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이러한 도시 전반에 발생하는 범죄를 순찰로 해결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이에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순찰보다 도시에 방어적 공간을 구축해 범죄 자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그 결과 건축설계, 도시계획 등을 통해 방어적 공간을 형성하는 셉티드 이론이 등장했다.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환경심리학자 라포포트는 “범죄나 무질서에 대한 불안감은 결국 환경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범죄의 경우 범죄발생 유형을 분석하면 뚜렷한 시공간적 패턴이 존재하며 실제로 대부분 범죄 발생지역에서의 상황적 요인들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적 요인들을 고려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제인 제이콥스는 ‘거리의 눈’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길가에 다양한 시설을 배치해 많은 사람들을 유인하면 자연스럽게 주변을 감시, 관찰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감시가 잠재적 범죄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셉티드가 가장 강조하는 ‘자연적 감시’의 기반이 되는 이론이다. 제인 레프리는 1971년 자신의 저서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에서 환경과 범죄의 상관관계에 대해 밝히고 셉티드 이론을 정립했다. 이렇게 등장한 셉티드는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놓는 단순한 시설 배치에서부터 도시 전체적인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는 기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자연적 감시와 접근통제, 사각지대 해소하고 안전성 제고

셉티드의 여러 적용원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적 감시’와 ‘자연적 접근통제’다. 자연적 감시는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울타리나 벽 등으로 시선이 차단되면 벽 뒤에서 어떤 행위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범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셉티드를 이용해 공간을 구성한다면 담을 낮게 짓거나 주변 건물에서 해당 공간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충분히 관찰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연적 접근통제는 목적지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공간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이는 도주경로를 제한해 범죄가 발각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높여 범죄를 예방하는 원리다. 혹은 범죄자의 경로를 제한하는 것과는 반대로 범죄가 행해지는 공간을 오히려 탁 트인 곳에 배치함으로써 범죄자의 도주경로를 적나라하게 노출해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셉티드의 원칙은 우리대학 중앙도서관 뒤편에서 생활관으로 이어지는 공간에 적용될 수 있다. 평소 후문에서 이 공간을 거쳐 생활관에 들어온다는 신수진(국문 13) 씨는 “중앙도서관 뒤와 생활관 사이의 쓰레기 소각장은 우리대학의 사각지대 같다. 해가 뜬 낮에도 나무들 때문에 어둑어둑한데 특히 밤에는 가로등이 많이 없어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지나다녀야 할 정도로 으슥하다”며 “이 길이 아니면 생활관까지 크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편의상 이 길을 이용한다. 하지만 좀 더 보안대책이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우리대학 도시공학과 양승우 교수는 “이 공간에 누가 접근하는지 서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가로등의 도입이 제일 시급하다”고 답했다. 이어 양 교수는 “나무를 비롯해 시각적 투과성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많아 자연적 감시가 어렵다면 강제적으로 감시를 할 수 있는 CCTV가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진짜 CCTV가 아니더라도 ‘녹화 중’이라는 팻말이 붙은 CCTV가 존재한다면 자신이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범죄를 덜 저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로등·CCTV를 설치하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접근성을 키우는 다양한 시설을 배치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설 배치는 공간과 접해 있는 중앙도서관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중앙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문제가 된 공간이  학업 중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전환된다면 이 공간의 사용자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벤치 및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운동기구를 비롯해 가볍게 피로를 풀 수 있는 지압판을 설치해 사람들의 접근을 자연스레 유도하여 이 공간에 자연적 감시가 이뤄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셉티드의 실효성 대두, 하지만 셉티드에 기대서만은 안돼

영국에서는 범죄문제의 해결로 셉티드의 개념을 적용한 ‘방범환경설계제도(이하 SBD)’를 도입했다. SBD란 건물 설계시 범죄예방 환경설계 방식을 적용하도록 국가차원에서 촉구하는 제도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시에 SBD를 적용하자 놀랍게도 범죄율이 75%나 감소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이에 미국을 비롯해 네덜란드, 호주, 싱가포르, 일본 등 다수의 나라들에서도 셉티드 조례를 신설하고 건축과 도시개발 및 환경분야에 적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이에 발맞춰 셉티드 제도화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뤄져왔다. 2007년 경찰청에서 범죄예방을 위한 설계지침을 발표했고, 서울시도 뉴타운사업 범죄예방 환경설계 지침에 대해 발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셉티드를 적용하고자 노력해왔다.

중요한 점은 셉티드가 모든 범죄를 예방하는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강력범죄의 경우 기회적 요인뿐 아니라 우발적 요인들도 함께 작용하여 발생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셉티드에만 의존해서는 안되며 다른 방범대책들도 종합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셉티드 디자인의 역기능 또한 고려해야 한다. 자연감시를 위해 낮게 설치된 담장이 사생활 침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지, 지나치게 많은 보안 설비가 오히려 폐쇄적 공동체를 유발하는 건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비판적 논의를 거쳐 더욱 발전적인 셉티드가 완성된다면 범죄에 대한 근심을 한결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_
이경훈·강석진·(주)에스원, 『공동주택 범죄예방 설계의 이론과 적용』,  문운당, 2011.
김수봉, 『셉테드(CPTED)개념을 적용한 안전한 어린이공원』, 박영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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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_ 박소은 기자 thdms010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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